기사섹션 : 사회 등록 2001.12.30(일) 20:22

새해소망요?"…거리생활 끝났으면"

한통 계약직 노조
두번째 '거리 종무식'
2001년 한 해가 또 지나간다. 돌이켜보면 참 힘겨운 한해였다. 다가오는 말띠해는 좀 나아질까? 한 해의 마지막 길목에서 모두 작은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한 켠에서는 `희망'이란 말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희망찬 새해 햇살이 떠오르지만 `비정규직 장기파업' 노동자들은 새해에도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29일 오후 함박눈 쏟아지는 서울 명동 한빛은행 앞 네거리.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원들은 2001년을 마감하는 종무식(?)을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거리에서 맞는 세밑 마무리 집회다.

“봄이 코 앞이던 지난 3월말 목동전화국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날에도 이렇게 함박눈이 쏟아졌지요.” 대구에서 올라온 최봉준(31)씨는 “언제쯤 거리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윤성진(33)씨는 지난해 12월13일 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면서 구미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 “집에 내려간 횟수가 다섯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허허롭게 웃었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니 여섯살난 딸이 가까이 오려고도 하지 않더군요. 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돌지만, 이대로 멈출 순 없지 않습니까.”

70만원도 채 안되는 월급이었지만 오직 정규직으로 해주겠다는 회사쪽의 약속만 믿고 버텨왔으나 윤씨에게 되돌아온 것은 한장의 해고통지서였다. 윤씨는 세종대 한 강의실에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60여명의 노조원들과 함께 겨울나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 회사의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로 거리를 내몰린 이후 31일로 무려 384일째 끝모를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한국통신 노조원들. 1년이 넘도록 싸움이 이어지면서 120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들은 이제 242명으로 줄어들었다.

파업과 관련해 업무방해와 도로교통법·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합원들에게 부과된 각종 벌금만도 지금까지 무려 8700여만원에 이른다. 생계의 벼랑끝에 몰린 이들에게 날아든 벌금 고지서는 그들의 지친 어깨를 더욱 짓누른다.

밀려드는 불안감을 떨쳐 내지 못하고 새해를 맞기는 레미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20일부터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비닐천막에는 30일 오후 살을 파고드는 찬바람이 쉴 새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은연중에 배차거리를 멀게 하거나, 괜시리 도로 사정이 나쁜 곳으로 보내는 등 따돌리는 기색이 역력해요.” 지난 10월 생계 압박에 못이겨 잠시 파업을 접고 회사에 복귀했다는 ㅈ(36)씨는 “가장 답답한 것은 파업 초기에 먼저 현장에 복귀한 동료들이 회사쪽 입장만을 대변할 때”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조탈퇴를 약속하고 현장에 복귀한 그였지만 여전히 농성텐트 언저리를 떠나지 못한다. “파업기간 동안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이혼까지 한 동료가 파업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전 재산인 레미콘 트럭을 팔아 파업기금으로 보태며 흘리던 눈물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난 4월10일 노조인정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이들의 투쟁도 공권력의 강제진압 등을 겪으며 외롭고 고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검찰은 지난 23일 단체교섭거부와 노동자해고 혐의로 고발된 레미콘 업주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레미콘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다”고 밝혀 이들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레미콘 노동자들은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싸움을 하지 않고서는 새벽 4시께 출근해 15시간 가량 일하는 `살인적’ 노동을 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좀체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 11월말 현재 1개월 이상 장기분규 사업장은 모두 74곳에 이른다.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97년 24곳에 머물렀던 장기분규 사업장 숫자는 98년과 99년 각각 47곳과 46곳으로 늘어났으며, 지난해 87곳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민주노총이 11월16일부터 이번달 14일까지 전국 30만8천여명의 조합원을 상대로 ‘김대중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한 신임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87.9%가 ‘신임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대전 신탄진전화국에서 일하다 해고된 한국통신 계약직 사원 이주현(25)씨는 “부모님 곁으로 하루빨리 돌아가는 것이 새해의 소망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당당하게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까지 참고 견뎌낼 것”이라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한국통신 계약직 사원들과 레미콘 노동자들의 외롭고 고단한 싸움은 새해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730여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도 함께. 정인환 최혜정 기자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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