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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8.21(목) 21:47

‘백신=공짜’ 깨야할 고정관념?


자신의 컴퓨터가 새로 나온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의심이 가면 바이러스 백신을 업데이트해서 치료하면 된다.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백신이 컴퓨터에 깔려 있지 않아도 이용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내외 보안업체들은 전에 없던 특정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때마다 그 바이러스를 잡아주는 전용백신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대표적인 보안업체 가운데 하나인 하우리가 이르면 10월부터 전용백신을 유료화하겠다고 선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업체쪽은 ‘백신=무료’라는 이용자들의 인식을 바꿔주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도 감수할 생각이라고 밝혔고, 이용자들은 긴급 대응용 백신까지 유료화하려는 업체의 상술에 맞서자며 불매운동까지 벌일 태세다.

■ 하우리 ‘돌출행동’ 배경=하우리의 전용백신이 유료화된다고 해서 이용자들이 당장 불편을 겪는 것은 아니다. 다른 회사들의 전용백신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또 요즘 금융기관 등 많은 인터넷사이트가 백신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인터넷 상에서 진단 및 치료를 해주는 원격치료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우리는 전용백신 유료화 선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그나마 하우리 제품을 구입해 이용했던 소비자들까지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하우리가 회사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초강수’를 들고나온 이유는 뭘까

권석철 하우리 사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입만 생각했으면 이런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와 소비자들에게 보안업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사정을 알리기 위한 충격요법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인터넷 바이러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직원들은 그야말로 초죽음이 됩니다. 전 직원이 일손을 놓고 달라붙어도 폭주하는 전화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요. 컴퓨터를 잘 모르는 이용자라면 2-3시간씩 통화하기도 하고, 겨우 원인을 찾아보면 바이러스가 아닌 초고속인터넷이나 컴퓨터 불량인 경우도 많습니다. 또 대형바이러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만관대응팀이라는 것을 꾸려 당연하다는듯이 사람을 보내라고 합니다. 공익적인 필요로 무료봉사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핵심인력들이 며칠씩 자리를 비우는 것은 업체로선 감당하기 힘든 부담입니다.”

권 사장은 공짜로 백신을 내려받아 가는 이용자들 전화까지 모두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작 돈을 주고 제품을 구입한 이용자가 상담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으로서 고객관리나 고객만족은 교과서에 묻어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권사장은 주주들로부터 ‘하우리는 주식회사냐 봉사단체냐’는 식의 항의를 받을 때가 가장 괴롭다고 말했다.

하우리는 백신은 공짜고 바이러스 치료는 당연히 해야 하는 봉사활동이라는 소비자와 정부의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보안산업 육성을 부르짖는 정부도 정작 구매할 땐 제품의 적정가격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최저가입찰만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 사장은 “정부에 납품하는 가격은 업체들이 생각하는 적정가격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 전망=‘항의시위’ 성격이 짙은 하우리의 전용백신 유료화 선언이 다른 업체로 확산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안철수연구소는 “하우리가 밝힌 보안업계의 실정은 사실이지만, 전용백신 유료화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며 업계의 이해를 위해 하우리 뜻에 동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시만텍코리아와 한국트랜드마이크로도 전용백신 무료공급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연구소쪽은 “바이러스 하나가 국가적인 혼란과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보안회사의 수익걱정을 뛰어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우리가 땀흘려서 개발한 기술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한다는 공익정신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안업계 관계자는 “하우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가려운 데를 긁어줬다”며 “바이러스 피해규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는 요즘 몇몇 민간업체들이 그 짐을 감당하기엔 버거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안은 국가안보와 연결되는 중대사안인만큼 정부가 예산을 들여 백신 등 보안소프트웨어를 구매한 뒤 국민들에게 싸게 보급하는 방법, 최소한 공공구매에서는 적정가격을 보장해주는 방법 등이 다각적으로 모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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