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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2.19(목)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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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걸어온 길 : 가난·역경 딛고 인권변호사로


노무현 당선자는 굴곡의 인생역정을 보냈다. 그 연배라면 대체로 겪었을 어린시절의 가난을 어렵게 극복하고 인권 변호사로, 정치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마다 좌절과 도전이 함께 아로새겨져 있다.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도 한때는 청문회 스타로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 결과 국회의원과 단체장 선거에서 여섯차례 도전에 네차례나 낙선하는 고통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집념을 보여줬다.

◇ 가난에 짓눌렸던 학창시절

노무현 당선자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6일(음력) 경남 진영 봉화산 자락에서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 사이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노무현은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섯살 때 천자문을 외어 ‘천재’로 통했고,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 시절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늘 가난에 짓눌렸고 이로 인해 반항아 기질을 내보였다고 노 당선자는 회고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교내 붓글씨 대회가 열렸는데,그는 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제출했다.‘잘못 쓰더라도 종이를 바꿔주지 않는다’는 지시를 따른 것이다.그런데 다른 친구가 자기 아버지인 옆반 교사의 도움으로 종이를 바꿔 다시 써서 1등을 하자 승복할 수 없다며 2등상을 반납하는 오기를 부렸다.

중학교 2학년 때는 3·15 선거를 앞두고 ‘우리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글쓰기 행사가 열리자, 불법선거 운동이라며 ‘백지동맹’을 주도했다. 그는 이 일로 반성문을 강요받았지만,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부산상고 시절에는 드러내놓고 엇나갔다. 아예 수업도 빼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담배를 배웠다.중학교까지 상위권을 유지했던 학교성적도 고교시절에는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노 당선자는 고교 졸업 뒤 삼해공업이라는 어망회사에 취직한다.그러나 한달 반을 일하고 손에 쥔 것은 6천원.처참한 현실 앞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으나 결국 울산 막노동판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일당 180원에, 밥값을 빼고 나면 겨우 75원 벌이였다. 암담한 현실에 절망한 그는 결국 고시 도전을 결심한다. 68년 군에 입대했다가 71년 제대한 그는 본격적으로 고시에 매달린다.이 즈음 마을 처녀 권양숙씨를 만나 연애 끝에 73년 결혼한다.

◇ 돈 잘 버는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노 당선자는 75년 고시에 합격한다.사법연수원 시절을 거쳐 77년 대전지법 판사로 임용됐으나 7개월 만인 78년 5월 변호사를 개업했다.주로 조세·회계 사건과 등기업무 등을 통해 돈을 제법 벌었다고 한다. 그는 돈 잘 버는 변호사 신분에 맞게 청년회의소나 라이온스클럽 사람들과 어울리고 비싼 술집도 다녔다. 뒤에 논란을 빚게 되는 요트를 즐기기 시작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그러나 81년 운동권 인사 20여명이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좌익사범으로 기소된 ‘부림사건’ 변론을 맡게 되면서 노 당선자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는 57일간 경찰에 구금돼 고문을 당한 학생을 접견한 뒤 충격을 받는다. “얼마나 고문을 당하고 충격을 받았는지 처음엔 변호사인 나조차 믿으려 하질 않았다.공포에 질린 눈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과 교류하게 되고, <전환시대의 논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그 시절 젊은층에서 널리 읽히던 이른바 ‘이념 서적’도 탐독하게 된다. 인권 변호사 노무현은 이렇게 태어난다.

92년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변론에 참여했던 노 당선자는 86년부터는 변호사 업무를 거의 중단하고 재야운동에 뛰어든다.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으로 6월항쟁에 적극 나섰고, 같은 해 9월에는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가 최루탄에 맞고 숨진 사건에 뛰어들었다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되면서 변호사 업무정지를 당한다.당시의 공안 검찰이 노 변호사를 구속하기 위해 하룻밤에 세 차례나 판사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영장 청구를 시도해 논란을 빚은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노 당선자의 생활태도도 변화를 겪은 것 같다. 부인 권씨는 “남편이 운동하면서 돈이나 갖다 쓰고 집안은 나몰라라 해 불평도 많이 했지만,그 이후 여자를 존중할 줄 알게 됐다.그것 하나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당시 함께 활동했던 이호철씨는 “노 당선자가 언제부터인가 승용차를 놓아두고 집에서 사무실까지 1시간 거리를 버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며 “노동자와 서민의 처지에서 세상을 보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요트도 그만두게 된다.

◇ 정계 입문과 좌절

노 당선자는 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 의해 재야인사 영입케이스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다. 그는 정치입문 동기에 대해 “변호사보다 국회의원이 억압받는 노동자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89년 5공 청문회를 통해 부산 ‘촌놈’에서 일약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한다.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정주영 현대 회장, 이종원 전 법무장관 등 증인들을 궁지에 모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불과 몇달 뒤인 90년 1월 노태우·김영삼·김종필씨의 3당 합당이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그의 정치인생은 고난의 가시밭길로 들어선다. 그는 3당 합당을 부도덕한 ‘야합’으로 규정하고 정면으로 반대했다. 김영삼 당시 대표를 ‘변절자’‘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후 노 당선자는 91년 9월 3당 합당에 불참한 이기택씨 등의 ‘꼬마 민주당’과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신민당이 합친 통합민주당의 대변인을 맡게 된다. <조선일보>와의 악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 직후이다. 그는 <주간조선>이 ‘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자, 허위사실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일부 승소로 2천만원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노 당선자와 조선일보 쪽의 악연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노 당선자는 3당 합당의 대세를 좇지 않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92년 3월 14대 총선, 95년 6월 부산시장 선거에서 거푸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쓴잔을 마셨다.

좌절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95년 9월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총재가 새정치국민회의를 따로 창당하면서 야당이 분열되자 노 당선자는 다시 반기를 들었다. 그는 국민회의 창당을 “보스 중심의 줄서기와 이합집산의 전근대적 정치행태”라고 비판하며 민주당에 남았다. 노 당선자는 이듬해 4월 총선에서 ‘3김 청산과 세대교체’란 깃발을 내걸고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했으나, 세 김씨의 지역분할구도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다.

◇ 도전과 새 희망

노 당선자는 민주당 잔류파들과 함께 결성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서 활동하다, 9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정권교체가 중요하다”는 논리에 따른 결정이었다. 당시 통추는 ‘3김 청산과 세대교체’를 내건 이인제 후보 지지 쪽으로 기울었으나, 노 후보는 “3당 합당을 따라간 이인제 후보는 3김 청산과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수 없으며, 현 시대의 과제는 정권교체”라고 주장했다.

노 당선자는 그 뒤 98년 7월 종로 보선에서 6년 만에 원내입성을 이룬다. 그러나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역주의에 도전하겠다”며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노 후보는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평생의 꿈, 동서 분할구도를 끝내고 국민통합을 이루면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현실의 높은 벽만 확인하고 또다시 낙선의 쓴잔을 마시고 말았다.

하지만 이 낙선으로 그는 한 단계 더 도약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무모한 도전’을 안타깝게 여긴 지지자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도 이를 계기로 결성됐다.

그는 2000년 8월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게 된다. 그로서는 당시 “정치인 집단을 조직화하고 세력으로 엮어 이끌어 나가는 조직적 리더십을 한번도 실험해 보지 않았다”고 스스로 토로했듯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기회였다. 해수부 장관 시절 수협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나름대로 행정경험도 쌓게 된다. 그는 2001년 2월에는 장관 신분으로 당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른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찬성 뜻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김중권 당시 민주당 대표를 ‘기회주의자’로 규정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노 당선자는 2001년 3월 장관직을 떠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대선 후보경선 준비에 나선다.그렇지만 돈도 조직도 변변찮은 처지였던 그의 가능성을 주목하는 이는 드물었다.그러나 국민참여 경선제는 그동안 지역주의와 맞서 싸워온 노무현을 외면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노무현 바람’을 일으키며 ‘이인제 대세론’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그러나 노 당선자 앞에는 아직 한 고비가 더 남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고 몇차례 말실수로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국민 지지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내 ‘반 노무현’ 세력이 본격 결집하면서 당내 ‘노무현 흔들기’가 본격화한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결국 월드컵축구 4강 열기를 타고 ‘정몽준 바람’을 일으킨 국민통합21의 정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는 승부수로 다시 반전의 돌파구를 열었다. 그리고 12월19일 ‘단일화 바람’을 대선까지 몰고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정치역정의 한 장을 마무리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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