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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5.16(월) 18:56

“고위직 깨끗하지 않으면 정책 왜곡”




‘사회정의’보다 더 큰 문제로 뽑아
국민 눈높이 ‘완전무결’에 가까워
경제·교육분야 도덕성 요구 엄격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을 재는 국민들의 잣대는, 예상보다 훨씬 엄격했다.

<한겨레>가 지난 13~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은 고위 공직자의 주요 덕목으로 직무수행 ‘능력’보다 ‘도덕성’을 꼽았다. 완벽 또는 완벽에 가까운 도덕성을 주문하는 사람도 88.1%나 됐다.

장·차관 등 고위직만이 아니다. 과장급 공직자에게 일반 시민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응답자가 78.0%나 되는 것을 보면, 국민들은 확실히 공직사회 전반에 ‘청렴’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는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등 현실적 문제를 판단하는 대목에서 더 높아진다. 노무현 정부에서 최근 도덕성 시비로 퇴진한 고위 공직자들이 있었음을 지적한 뒤, 고위 공직자 임면의 기준을 물은 양자택일형 질문에, 90.3%의 응답자는 ‘능력이 있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고위 공직을 맡으면 안된다’고 답했다. 홍석현 주미대사가 지금이라도 사퇴해야 한다고 보는 의견(68.2%)이 그 반대(23.2)보다 훨씬 더 많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국민들은 왜 도덕성을 공직 인선의 최우선 잣대로 꼽는 것일까? ‘중요한 정책 결정을 잘못할 수 있기 때문’(37.6%)이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사회정의에 어긋나기 때문’(34.8%)이나, ‘국민정서에 반하기 때문’(25.5%)은 그 다음 순위로 밀렸다. 이런 결과는, 이번 조사에서 ‘도덕성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분야의 장관’ 1·2순위로, ‘부동산 정책 등을 다루는 경제분야의 장관’(58.2%)과 ‘입시 등을 다루는 교육부 장관’(32.5%)을 꼽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책 결정과정에서 있을 지도 모를 ‘이해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부동산 투기를 해서 상당한 차익을 남겼거나, 현재 투기성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해당 정책을 다루는 주무 장관이 된다면 정책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입시 등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은 재산 축적의, 교육은 신분 상승의 유력한 기회로 인식되는 만큼, 관련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요구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동산과 관련해 국민들은 부동산 투자가 ‘나쁜 것이 아니’(70.9%)고, 자신에게도 여유 자금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 뜻이 있다’(65.2%)고 답해, 적극 수용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저축이 효과적인 재산증식의 수단이 못되는 현실에서, 부동산 투자를 또다른 ‘기회’로 본다는 뜻이다.

투자를 위해 위장전입이나 미등기 전매를 해서는 안된다는 응답자는 82.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높은 도덕성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기회의 공정성과 같은 ‘게임의 룰’을 깨지 말라는 요구이기도 하다”며 “이런 ‘이중성’이 부동산 문제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기회’로 여기는 부동산 시장에서 고위 공직자가 돈을 벌었다고 하면, 국민들은 이를 ‘우월한 지위에 기댄 불공정 경쟁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연령대별로 큰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20대 응답자들의 시각은 다른 연령대와 차이가 났다. 20대의 81.0%는 ‘부동산 투자가 나쁘지 않다’고 응답해 전체 평균(70.9%)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또 20대에서 부동산 투자를 위해서는 위법이나 탈법을 ‘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20.1%)도 전체 평균(14.1%)을 웃돌았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YS정권 이후 낙마 사례 살펴보니
부동산 투기 집중 ‘돌 세례’
26명중 14명이나 줄사퇴
개인비리·자녀편입학 순

고위 공직자들이 도덕성 문제로 줄줄이 ‘낙마’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이전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정부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정보와 언론의 보도를 통제해 문제점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합리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 시기별 특징

김영삼 정부는 조각 발표 11일 만인 3월9일 장관 3명과 서울시장을 퇴진시켜야 했다. 폭풍의 전주곡이었다.

3월부터 재산공개가 시작됐다. 박준규 국회의장은 아들 이름으로, 땅 17만평과 75가구가 사는 연립주택 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46억1800만원 신고)과 유학성(58억400만원 신고), 김문기 의원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민자당은 정동호 의원(29억원 신고)을 제명했다. 또 정부는 차관급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것으로 신고한 정성진 대검 중수부장(62억5천만원)을 비롯해 차관급 5명을 의원면직시켰다.

93년 9월10일과 13일에는 김덕주 대법원장과 박종철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9월20일에는 김효은 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들이 부동산 투기 의혹 등과 관련해 줄줄이 사퇴했다.

워낙 많다보니 사퇴의 기준과 원칙이 없었다. 투기를 하고도 버틴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로 실제로 투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억울하게 옷을 벗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도 주양자 장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시작으로 장관들의 낙마 행진이 이어졌다. 99년 5월 개각 뒤 김태정 법무부 장관과 손숙 환경부 장관의 도덕성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김영삼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장관들의 도덕성은 국민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2년에는 장상, 장대환 두 사람을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하고도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국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도 국민들이 고위 공직자에 대해 어느 정도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더구나 인사검증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사태로 출발했다. 아들의 이중국적 및 병역기피 의혹 등 몇 가지 문제가 터져 나왔지만, 노 대통령은 덮고 넘어갔다. 노 대통령은 그 대가를 2005년에 치르고 있다. 이기준, 이헌재, 강동석 장관이 줄줄이 사퇴한 것이다. 2005년 4월15일엔 홍석현 주미대사의 부동산 투기 문제가 터져 나왔지만, 노 대통령은 그를 경질하지 않고 아직도 버티고 있다.

◇ 퇴진 공직자 분석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장관 등 ‘장관급’ 이상 주요 공직자들의 ‘낙마’ 사례를 모아 보았다.(표 참조)

모두 26명 가운데 부동산 투기 의혹이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자녀 편법입학 등 가족 관련 비리 의혹은 7명이었고, 뇌물수수 등 개인 비리가 4명, 기타 1명이었다.

이런 결과는 고위 공직자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역시 부동산 투기 의혹임을 보여준다. 부동산 투기는 70~80대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부동산 투기 의혹이 고위 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논란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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