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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김대통령 고뇌와 결단


[편집자주] 2001년의 정치권은 전국적인 규모의 선거가 없는 해였음에도 불구,연초부터 여야간의 끊임없는 반목과 정쟁이 이어지면서 정국이 `1여2야' 구도의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재편되고 여권의 내분속에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을 내던지는 등 크고작은 파란과 격변이 잇따랐다. 신사년 한해 정치권과 국회의 움직임을 5회에 걸쳐 되돌아본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2001년은 `고뇌의 한해'이자 `결단의 한해'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두가지 상징적인 사건이말해주듯이 영광과 기쁨을 안겨줬던 2000년과는 달리 2001년은 국내외적으로 시련과고통의 연속이었다.

밖으로는 조지 W 부시 미국 신정부 출범 이후 남북 및 북미관계 악화, 기대됐던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 무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한일관계 경색, 9.11 미국 테러사태 등 외부환경 악화에 시달렸다.

안으로도 김 대통령은 경제 불황과 잇단 비리의혹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과 재.보선에서의 집권당 패배, 민주당 내부의 갈등과 분열, DJP 공조붕괴 등 각종 시련에직면했다. 이러한 내우외환은 결국 김 대통령에게 집권여당의 총재직 사퇴라는 결단을 강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1월 11일 내외신 연두회견을 통해 "강력한 정부를 실현해 나가겠다"면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청사진을 제시할 때만해도 김 대통령에게 2001년은 희망과 비전의 해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경제살리기와 남북관계 공고화 등에 초점이 맞춰진 김 대통령의 집권후반기 국정운영 구상은 대북 강경책을 내세운 미국의 부시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밖으로부터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부시 신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달리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대북 강경노선을 제시했고, 이에따라 북미관계는 물론 그동안 공을 들여온 남북관계까지 덩달아 경색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김 대통령은 3월 6일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가 부시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대북정책 조율을 시도했다.

그러나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의구심(Skepticism)을 표명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북한은 3월 11일 서울에서 열기로 예정돼 있던 제 5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6개월여 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다가 미국 테러사태 직후인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됐으나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된 6차 장관급회담은 아무런 성과없이 결렬됐다. 이로인해 금년에는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성사되지 않은 것은 물론 이산가족상봉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또 김 대통령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따라 악화된 한일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기위해 1년 동안 씨름해야만 했다.

국내문제를 헤쳐나가기는 이보다 더욱 어려웠다. 특히 여권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김 대통령에게 견디기 힘든 번뇌와 고통을 안겨줬다.

지난해 말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2선퇴진으로 봉합됐던 민주당내부의 갈등은 `임동원 통일부장관-신 건(辛 建) 국정원장, 박지원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주요 포스트에 기용한 3.26 개각 이후 다시 불거졌다. 전국 7곳에서 치러진 4.26 기초단체장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는 등 민심이반 현상이 뚜렷하자 민주당내 일부 최고위원과 소장파 의원들은 당과 청와대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적쇄신을 요구하면서 김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다.

특히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임동원 통일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표결과정에서 공동정권의 한 축을 이뤄온 자민련이 한나라당에 동조함으로써 김 대통령은 `DJP공조' 붕괴를 감수하면서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고수하는 사태를 맞게 된다. 이에따라 김 대통령은 9.7 개각을 통해 이한동 총리를 유임시키고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을 민주당 대표에 기용하는 등 당정의 면모를 새롭게 했으나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10.25 재.보선' 선거에서 또다시여당이 패배함으로써 여권의 내분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민주당내 일부 최고위원과 소장파 의원들이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의 정계은퇴 등을 요구하면서 당은 내분에 빠져들었고 이런 집권당내 갈등은 차기 대선구도와 맞물려 혼미를 거듭했다.

결국 김 대통령은 고뇌를 거듭한 끝에 11월 8일 민주당 총재직 사퇴라는 고강도의 결단을 내린데 이어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당정쇄신 파문을수습했다. 이후 김 대통령은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경제 경쟁력 강화 △서민 및 중산층 생활안정 △남북관계 개선 등 3대 국정과제와 △월드컵 대회 △부산 아시안게임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등 4대 행사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국정수행에매진하고 있다.

이같은 김 대통령의 결단은 국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국가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되고 주가가 상승세를 나타내는 등 경제호전 조짐으로 이어졌으나 세모를 앞두고 신광옥 법무차관의 수뢰설이 불거지는 등 여권내 비리의혹은 집권 마지막 해를 앞두고 의욕에 차있는 `국민의 정부'를 다시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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