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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5.09(월) 18:45

미국 상원 ‘필리버스터 제한’ 대치




△ (사진설명) 미국 상원에서 필리버스터(의사진행 지연) 존폐를 둘러싸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찬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왼쪽은 한 프린스턴대 학생이 지난 4일 필리버스터 옹호 시위에 참여해 글을 읽고 있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지난달 26일 조속한 판사 임명을 촉구하는 한 목사의 회견 장면이다. 워싱턴·프린스턴/AP 연합

연방법원 판사 인준 ‘의사진행지연’ 다툼

미국 상원이 연방항소법원 판사 인준 건을 놓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7명의 판사에 대해 상원 법사위가 지난달 말 인준안을 의결하고 전체회의에 상정하면서 민주-공화의 격돌이 시작됐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의사진행 지연)를 통해 이를 저지하겠다고 선언했고, 공화당은 사법부 지명자에 대한 필리버스터 제한 규정을 만들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해묵은 불씨=민주당은 2003년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항소법원 판사 10명을 필리버스터를 이용해 좌절시켰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이번에 이들 가운데 7명을 다시 지명했다. 이들의 인준안이 지난달 21일 상원 법사위를 통과한 뒤 본회의에 올라오자 민주당이 본격적인 필리버스터를 공언하고 있다.

민주당 “지나친 보수 성향 강행땐 상원 파국”

공화당 “사법부 인준엔 토론 제한 검토”

민주당의 반대 이유는 두 가지다. 데이비드 매키그 등 3명의 판사가 속해 있는 제6순회항소법원은 빌 클리턴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지명했다가 거부된 곳이다. 당시 공화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민주당의 보복이다. 또 재니스 로저스 브라운 컬럼비아 순회항소법원 판사 등 나머지 4명은 지나친 보수성향 인사들이라는 이유다. 이들은 동성애, 낙태, 소수자 우대정책, 사회보장제도 등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이다.

민주당이 강경하게 나오자 공화당은 상원 규칙을 개정해 필리버스터를 없애겠다며 반격에 나섰다. 공화당 상원대표인 빌 프리스트가 얘기하고 있는 일명 ‘핵 옵션’은 사법부 지명자에 대한 필리버스터만 제한하자는 것이다. 공화당은 다수당이 미는 사법부 지명자가 거부된 전례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지명한 에이브 포터스 대법원 판사가 대법원장이 되지 못한 예를 들고 있다. 특히 9일은 부시 대통령이 이 판사들을 처음 지명한 지 4돌이 되는 날이어서 가부간 결정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공화당 쪽에서 강하게 나오고 있다.

논란의 배경과 전망=민주당과 공화당이 이렇게 대결을 벌이는 데는 부시 대통령 임기 안에 대법관 후임자를 뽑아야 할 가능성이 높고, 사회보장제 개혁 등 안건들이 산적한 때문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5 대 4로 보수파가 우세한 상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 보수파인 토마스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2000년과 같은 선거 소송이 나올 경우 판결이 어떻게 될지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민주당은 이번에 밀리면 다음 대법관을 또다시 공화당에 주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고, 공화당은 대법원의 우위를 견지하자는 심산이다. 또 이번 항소법원 판사 지명의 향방에 따라 사회보장제도와 동성결혼, 안락사 등 사회적 안건들도 덩달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현재 상원 의원 100명 가운데 55명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필리버스터 제한 규정을 개정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정치적인 부담을 지느냐 않느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필리버스터를 제한할 경우 가장 중요한 법안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사 진행을 모조리 저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실제로 상원에서는 법안을 처리할 때 만장일치라는 관행을 쓰고 있으며 처리할 법안을 읽지 않고 넘어가고 있는데, 민주당이 규정대로 할 경우 1~2분이면 통과될 법안이 3~4일씩 걸릴 수도 있다.

공화당은 이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 민주당과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으며, 통과를 전제로 항소법원과 대법원 지명자에 대한 100시간 토론을 제안했으나 민주당은 냉담한 분위기다.

논란은 의회 밖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생과 동문들은 지난달 26일부터 상원 공화당 대표인 프리스트를 기념해 만든 ‘프리스트 캠퍼스 센터’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회와 이익단체들도 지역구 의원들을 상대로 광고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다수파 견제 ‘오래 말하기’ 전략…원뜻은 해적

필리버스터란




이탈리아 출신 미국 영화감독 프랭크 캐프라의 1939년작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를 보면, 주인공 스미스 역을 한 제임스 스튜어트가 상원에서 자신을 탄핵하려는 부정한 세력에 맞서 24시간 이상 법전을 읽는 등 계속해서 발언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의사진행 지연을 뜻하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해적이란 의미의 네덜란드 말이다. 미국 의회는 애초 상·하원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두었으나 하원에서는 의원 숫자가 늘어나면서 발언 시간을 제한하게 됐다. 반면 숫자가 적은 상원은 누구든지 필요한 만큼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계속 유지해 왔다.

1917년까지는 의원 한 명이 필리버스터 연설을 통해 독자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었으나, 세계 1차대전에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는 11명의 상원의원들이 필리버스터 권한을 무제한으로 활용해 상선의 무장을 허용하는 법안을 저지하면서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이에 따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상원에서도 3분의 2(67표)의 표결로 토론종결(클로처)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했다. 그러나 3분의 2도 얻기가 어려워 1950, 60년대 남부 출신 의원들은 인권법을 막는 데 필리버스터를 적극 활용했다. 이에 따라 1975년에는 클로처를 다시 5분의 3(60표)으로 줄였다.

필리버스터를 잘 사용한 의원으로는 1930년대 암살을 당한 휴이 롱 의원(루이지애나)이 유명하다. 그는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법안이 부자를 위한 것이라며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그의 수법은 헌법, 셰익스피어, 어머니의 요리법 등을 읽으며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리적 욕구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그의 필리버스터는 결국 15시간 30분만에 실패로 끝났다.

1957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스트롬 서먼드 의원은 민권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24시간18분 동안 혼자서 책을 읽어 새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64년에는 또다른 인권법을 저지하기 위해 남부의 분리주의 의원들이 연달아 필리버스터에 나서 87일 동안 법안을 지연시킨 진기록도 있다.

김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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