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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5.02(월) 17:16

인권위 ‘제몫인가’ ‘월권인가’ 취임 한달 조영황 위원장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향적 의견 표명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 의견에 대해 “현실을 잘 모른다”는 식의 신랄한 비판을 쏟아놓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런 반발에도 굽힘없이 사형제 폐지나 초등학생 일기 검사, 경찰직 등 키 제한, 공무원 직급별 정년 차별 등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진보적인 권고와 의견을 잇따라 내놓았다. 취임 한 달여 만에 논란의 칼날 위에 선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났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은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간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에게 “오늘 인터뷰하는 데도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며 “차려 입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래 복장이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운을 뗐다. 홍세화 기획위원도 “저도 원래 넥타이를 잘 매지 않는데, 오늘은 인터뷰 때문에 이렇게 넥타이를 맸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첫 질문은 조 위원장이 ‘시골 판사’ 노릇을 하던 몇 년 전 이야기로 시작됐다.

조영황 ‘동일노동·임금원칙’ 왜 헷갈려 하는가

홍세화 결국, 사유재산권 우위 한국 사회가 문제

홍세화 기획위원=고향인 고흥군 법원에서 판사생활 하시다가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시골 생활을 어떠셨습니까? 또 시·군 법원 판사라는 제도가 생소한데, 어떤 것입니까?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예전에는 순회 법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군 법원 판사를 따로 임명합니다. 경험 많은 변호사를 판사로 임용하는데, 제가 할 때는 9명이 임용을 받아서 일했습니다. 저는 고향인 전남 고흥군에 지망했는데, 승진 같은 것 없이 4년을 판사생활 했습니다. 시골 판사는 모든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액 심판이라고 해서 2천만원 이하, 이혼 확인, 즉결 등 재판을 합니다. 정년이 63살이라서 2004년에 퇴임하고 시골서 3개월 정도 쉬고 있다가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1년 한 뒤,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오게 됐습니다. 시골 판사로 일할 때는 그냥 내려가서 거기서 살았고, 그만둔 뒤에도 그냥 시골서 산다고 생각하고 한 3개월 농사를 지었습니다.

=시골 생활이 평온하셨을 텐데, 괜히 도시로 나오셔서 여러 논란에 휘말리셨습니다.(웃음)

=일해보니 저는 시골 판사가 적격이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감정 처리를 잘 못해서 큰 것보다는 작은 이해로 충돌하는데, 그것을 말리고 조정하는 일이 천직이구나 싶었습니다. 정년이 있어서 더 이상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로 와서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 일해보니 또 이게 적성이구나 싶더라구요. 그리고 국가인권위원장은 사실 맡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이것도 잘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마디로 지조가 없는 사람이죠.(웃음)

=최근 논란이 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외부에서 인권위가 월권이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직무유기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인권위가 왜 그런 평가를 받았다고 보십니까?

=인권위가 아직 3년밖에 안 됐는데, 많은 일을 했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직 인권위에 대해 이해가 많이 부족합니다. 한 방송 토론프로그램에서 노회찬의원이 “우리사회에서 인권은 그간 냉동상태에 있다가 이제 막 해동되고 있는 상태”라고 하시던데, 우리 사회에 ‘인권’이라는 가치가 아직 튼튼히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히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이른바 사회권에 있어서는 지금도 낯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권위에 대한 기대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솔직이 북한 인권 문제는 <한겨레>에도 난처함이 있습니다. 오히려 수구적 신문이 북한 인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입장 표명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2003년부터 북한인권에 대해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관련 국내외 시민단체와 전문가를 모시고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가졌고, 작년 말에는 국제심포지엄도 열었습니다. 북경과 연변·션양 일대에 가서 탈북자 실태를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현재는 ‘북한인권 실태파악을 위한 연구용역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곧 ‘국내 정착 탈북자 실태조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국내외 각종 정책자료 및 유엔 인권위원회에서의 북한인권 논의 모니터 활동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축적된 자료를 검토해서 국내정착 탈북자 인권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인권에 접근하는 인권위 입장에 대해서도 논의 할 것입니다. 지난 4월에 전원위원회를 마친 후 간담회 형식으로 위원들이 모여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신중을 기해 검토할 것입니다.

=70~80년대 납치·고문·살인 등 이 땅에서 인권이 참담하게 유린되던 시기에는 권력편에 서거나 침묵하고 경제성장을 말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북한 인권을 주장합니다. 흥미로운 일이지요.

=북한 인권 관련해서 미국에서 ‘북한인권법’ 을 통과시켰고, 일본에서도 비슷한 인권법이 의회에 계류중이고, 유엔에서도 북한 인권 관련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견은 그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미국·일본·유엔도 하는데 한국의 인권위는 뭐하냐고 하지만, 그런 것에 편승하지도 말고 우리 주관을 갖고 일해야 합니다.

마지막 ‘마주보기’에 국가인권위원장을 초청한 직접적 이유는 아마도 얼마 전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인권위과 노동부·여당 간의 갈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권위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은 사유를 제한해야 하며, 동일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황당무계하고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정면 비판했다. 그동안 인권위는 이 문제에 대해 말을 아껴왔으므로 이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노동부나 열린우리당에서 막말이 나왔는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들의 인권 의식 자체가 부족한 것입니까?

=원칙은 원칙대로 이야기하고 예외는 예외로서 인정해야 하는데, 이걸 구분을 못합니다. 인권위는 정규직이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비정규직을 인정하자고 말한 것입니다. 월급 적고 책임 적고 노조도 잘 안 되는 비정규직을 마구 터놓으면 회사쪽에서는 정규직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게 장차 국가적 문제가 될 것이니 비정규직을 제한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일노동·동일임금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 것도 국제적 원칙인데, 우리 사회에선 뭔가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우리는 인권위의 의견과 다르다”고 말하면 좋은데, “틀렸다”는 식으로 나오니 문제입니다. 그러면 정말 누가 틀렸나 따져볼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언어 사용도 정확치 않습니다. 정상이니 정규직이고 비정상이니 비정규직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게 거꾸로 됐습니다. 제가 살았던 프랑스의 경우 비정규직도 동일노동은 당연히 동일임금을 받습니다. 비정규직은 13개월까지 연장해서 고용할 수 있으나, 이 기간을 넘기면 정규직으로 바뀝니다. 특히 비정규직 13개월 동안에는 임금의 6~7%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수당’을 추가로 받게 됩니다. 정규직이 되면 오히려 이 수당을 받을 수 없어 임금이 줄어드는 꼴입니다. 그래서 고용자들은 이 비정규직 수당을 안 주기 위해서라도 더 빨리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도 합니다. 결국 생존권, 사회권, 보편적 인권보다 사유재산권이 우위에 서는 우리 사회의 조건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인권위원장의 임기 3년 동안 나는 기존의 자유권적 기본권보다 사회권적 기본권에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제는 노동도 양만이 아니라, 질도 문제 삼아야 하고, 취업률도 그 내용도 봐야 합니다. 지금은 (밥맛은 떨어지나 수확량은 많은) 통일벼로 되는 시절이 아닙니다. 삶의 질, 노동의 질, 노동의 가치를 봐야 할 때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은 안 맞습니다.

그리고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하는데, 국회 법 통과를 앞두고 의견을 표명해야 영향을 줄 수 있지 아직 무르익지 않았거나 통과돼 버린 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공청회 등을 거쳐 2년 동안 검토해왔던 문제를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에 발표했다고 봅니다. 양대 노총은 크게 미흡하다고 했는데, 정부는 그 상태로 통과될 수 있는 것을 인권위가 막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말 안해도 될 것을 왜 했냐는 반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 지금은 통일벼로 사는 시절 아니다 삶의 질서 비정규직 양산 옳지못해
홍/ 프랑스선 비정규직 동일노동-임금 특히 임금 6∼7%수당 추가로 받아

=노동자들의 주체 역량은 부족하고 어떻게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법적 보호 장치는 만들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가던 상황 아니었나 싶습니다. 비정규 법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표명이 두 노총에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고, 정부나 여당에서는 자신들의 의도대로 잘 돼가던 것에 인권위가 훼방놓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두 노총쪽에서는 잘 돼가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뭐가 잘 돼가고 있었습니까? 내용이 문제인데, 인권위를 비난하는 쪽에서는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노동자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법안 논의가 바른 길로 가도록 한 것입니다. 인권위의 의견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왔는지 잘 모르면서 훼방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인권위가 사안마다 국가기관과 대립각을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권위는 어느 정부기관 소속이 아니라, 독립기구로 업무가 독립돼 있습니다. 환경부와 건교부의 견해가 서로 다를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인권위도 또 다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잘못된 점은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인권위만의 업무로 보는 것입니다.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기관인 국회, 정부, 법원이 모두 해야 할 일이지, 위원회가 단독으로 할 일은 아닙니다. 정부나 국회는 인권을 침해해도 되고 인권위는 그 인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까? 다른 주요 국가기관들도 모두 인권을 지키도록 돼 있습니다. 다만 인권위는 정부나 국회가 인권을 잘 보호하는지 감시·비판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기관간의 뜻이 맞느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인권위로서는 당연한 결정을 내린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국보법은 제가 오기 전이라 말하기 그렇습니다. 사형제 폐지는 논의를 충분히 한 상태여서 제가 와서 결론만 지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더 많았지만,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는 데는 공감하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국민들도 이 문제와 관련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습니다. 사형제 폐지운동이 1989년에 시작됐는데, 저도 그때 사형폐지 운동에 관여했습니다. 당시 서울 구치소가 서대문에서 경기도로 옮겨지면서 고등법원 소재지마다 사형장을 설치했습니다. 당시에는 사형제 폐지 반대 의견이 99%라고 할 정도로 “나쁜 사람은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사형제 폐지라는 말도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폐지 운동 하는 사람도 법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고,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사형제 폐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미 사형 집행을 안 한지 8년 정도 되니까 실질적인 폐지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81년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징적으로 사형제부터 폐지했습니다. 프랑스를 인권국가라고 생각하지만, 70년대까지 기요틴(단두대)이 있었습니다. 사형제 폐지는 관련자는 많지 않아도 인권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하는 촉매가 돼 사회에 주는 의미가 큽니다.

홍 위원은 이 대목에서 “마주보기를 하다 보면 실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함께 보기’가 되고 만다”며 “마주보고 싶은 분들은 다 인터뷰를 피해서 그렇다”며 멋쩍어 했다. 이어 홍 위원은 프랑스에서 자신의 처지기도 했던 ‘이주노동자’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 대목에서는 조 위원장의 말에 남규선 공보담당관이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 사회의 사회적 약자의 인권현실을 평가할 때 두 집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범죄를 저질러 갇힌 재소자와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인 이주노동자를 보면 됩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는 인종차별과 결합되면서 기본적 인권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인권위가 재소자 인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역할 했지만,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재소자 인권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처음부터 관심 가졌고, 면전 진정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재소자가 인권위 직원과 직접 만나서 진정하는 제도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대단한 것입니다. 진정의 내용이 얘기가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통해 많은 개선이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너무 진정이 많아서 그 업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현재 인권위 직원이 2백명 정도인데, 이들이 자기 일을 일대로 하면서 진정 받으러 매번 교도소에 출장을 가니 애로가 꽤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이 있다고 해도 바로 만나지 못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인권위는 재소자 문제뿐 아니라, 정신병원·기도원같은 다수인 보호시설에도 관심 갖고 있습니다. 이 곳들은 노인이나 심신 질환자들에게 인권 침해가 있을 수 있는 곳이고 이들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재소자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진정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다수인 시설에는 방문 조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 시설에는 수용자 숫자에 따라 국가 지원이 이뤄져서 시설에서 수용자 숫자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인권위의 기여가 있었습니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실효성이 없었는데, 인권위가 초기에 인력 수급 방안에 대해 2차례 권고했고, 이것이 정부가 법을 제정할 때 반영됐습니다. 물론 이주노동자 문제 초기에 정부가 단추를 잘못 끼워서 아직 법에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 노동자들이 강제 추방될 때 인권위가 긴급구제 조처도 하고, 출입국관리소에서 조사해서 권고나 의견 표명도 합니다. 이주노동자 실태 조사도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최근 일로 보면 버마(미얀마)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망명 거부나 체불임금 받게 해주고 추방한 일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마 제가 이주노동자 출신이라서 더 예민한 것 같습니다.(웃음) 그리고 사회적 약자 문제에 대해 인권 교육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급한 불을 끄면 항구적으로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에 인권 교육을 넣자, 또는 대학에 인권과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요전에 초등학교 일기쓰기 문제를 제기했는데, 학교 안에서 인권 상황이 어떤지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어린이들을 주로 피교육자로 보고,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만 봤지, 엄연히 존재하는 어린이들의 독립된 세계를 인정하지 않아왔습니다. 젊은이가 늙은이가 돼가는 과정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어른이 돼서도 초등학교 때를 추억하고 친구 찾고 그러는 것 보면 이 시절이 인간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사회가 등한시해왔습니다.

조영황
권고·의견에 낯설어 반발하지만 고정관념 깨고 수용률 80∼90% 달해

홍세화
어린이·입시교육에도 인권침해 뚜렷
무한경쟁구조 개선없이 인격 형성 의문

심지어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탈의실이 없어서 체육 시간에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는다고 합니다. 탈의실 같은 것은 생각만 있으면 얼마든지 마련해 줄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도 몇 ㎝로 깎으라고 하고 안 깎으면 이발기로 밀어버리기도 한답니다. 머리가 길면 깎으라고 하면 되지 그걸 막 밀어버리면 됩니까. 우리시대가 수직적 사회에서 수평적 사회로 가고 있고 군대도 많이 변화했는데, 학교가 아직 이렇습니다. 교사도 교수도 공무원도 노조를 만드는 시대입니다. 수직 사회는 도덕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회지만 수평사회는 법치로 가야 합니다.

또 세대가 바뀌었는데, 군대 안에서 예전처럼 기합을 주면 되겠습니까. 조선 때는 사육신을 인두로 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말이나 됩니까. 얼마 전에 군대에서 사병들에게 뭘 먹였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도 그 방법을 쓰니 군대가 강해지겠습니까. 엣날 생각 가지고는 안 됩니다.

=2003년 1월로 기억하는데, 유엔의 아동인권위원회에서 한국의 아동교육과 입시교육이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의식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학습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무한경쟁 구조를 바꾸지 않고 어떻게 인권과 인격을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평적 사회 관점에서 보면 법무부는 인권부·정의부와 같은 이름으로 가야 합니다. 영어로도 정의부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인권 신장은 정부의 신자유주의 기조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평소에 나도 인권에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인권위 와서 보니 관심 없었고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한 달 앞두고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만들어 달라고 장애인 단체에서 우리 사무실에 와서 농성을 하다가 나갔습니다. 농성을 신사적으로 해서 의사표시는 하면서도 큰 불편 안주고 농성하고 나갔습니다.

사회나 나라가 균형을 갖지 못하고 너무 한쪽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다른 쪽도 다 어울려야 국가가 되는 것인데, 정부가 어떤 입장인가에 따라서 때로 인권위와는 맞지 않는 일도 생깁니다. 대통령도 원래 인권 변호사 출신 아닙니까. 대통령이 경제를 강조하는데,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인권에 대해 잠깐 잊어버렸나 하는 생각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동에 대한 일기장 검사는 언론의 거두절미가 있었습니다. 개선을 하라고 했는데, 일기를 쓰지 말라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언론에 하고 싶은 말씀은 없습니까?

=일기를 쓰지 말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기쓰기 지도를 검사나 시상의 방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일기 쓰지 못하게 하면 일기쓰기 지도를 어떻게 하느냐고 하더군요. 나중에 교육부에서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런 것은 보도가 안 됩니다. 공무원 정년도 6급 이하 57세, 5급 이상 60세인데, 실제로 5급과 6급이 무슨 큰 차이가 있습니까. 그런데 급수가 낮으니 먼저 나가라고 하니 이런 정년 문제를 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부에서도 비판하다가 지금은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이런 것도 보도가 안 됩니다.

경찰직 같은 데서 채용할 때 키를 제한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차별의 근거가 뭐냐고 문의했더니 합리적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 제한은 일본에서 하고 있고, 영국도 일부 하는데 다른 나라는 많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워낙 규격을 좋아하는 나라인데, 우리가 따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힘세고 날래면 경찰관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도 보면 키 작은 경찰관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도 처음엔 반발하지만, 언젠가는 수용할 것이라고 봅니다. 인권위의 의견에 논란이 생기는 것은 생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발하지만 뒤에 가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인권위 권고·의견의 수용률이 80~90%에 이릅니다. 인권위는 먼저 고정관념을 깨는 곳이고, 법을 고치는 데는 시간이 걸려 시차가 생깁니다.

=(남규선 공보담당관을 보고) 홍보실이 더 강화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일기장 사건 때 그런 것 느꼈는데, 사람들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언론보도가 나오면 기사만 보지 말고 원자료를 찾아서 보라고 합니다.

=인권위가 일기 문제를 지적했을 때 그렇게 크게 문제될지 몰랐고, 그 반응에 놀랐습니다. 인권위의 발표를 그대로 봤으면 별로 문제가 안 됐을 것입니다. 일기쓰기 문제는 새로운 이슈라서 기자들이 어떻게 봐야 할지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인권위 발표가 나간 뒤 교총이 즉각 반박 성명을 내니까 두 개 의견이 함께 나가면서 기사가 된 것 같습니다. 교총은 인권위의 권고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왜 인권위가 교육문제를 건드리냐”며 교권 침해로 몰아갔습니다.

=성폭력 범죄자의 전자 팔찌 문제가 최근 한나라당에서 제기됐는데요. 인권위의 의견이 있습니까?

=인권 문제라고 볼 수 있으나, 아직 안건으로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법을 낸다고 했으니까 기다려 봐야 합니다. 기자들은 인권위가 문제삼을 것으로 보고 전자 팔찌에 대해 빨리 이야기해달라고 합니다. 인권위의 활동이 근래에 집중 조명되니까 정부 기관에서 법이나 규정을 만들면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권위의 권고나 의견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지는 않습니까? 또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습니까?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옴부즈만으로 권고하고 의견을 내는 기관입니다. 시정할 수 있는 강제력이나 집행력이 있으면 재심 절차도 필요합니다. 인권위에는 언론 공표권이 있는데, 이것은 간접적인 방식이고 판결과 다른 것입니다. 인권위는 의견을 내서 각 기관이 스스로 시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인권위의 의견 표명은 별 부담이 안 되지만 권고에 대해서는 수용 안하려면 해당 기관이 설명하게 돼 있습니다. 인권위가 볼 때 시정하는 것이 좋은데, 왜 안 하는지 이유를 대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법에 설명해야 하는 기한이 없어서 기관들이 이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 개정안을 만드는데 설명 기한을 60일로 정하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권위가 다른 기관들이 들을 만한 의견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권위는 어느 기관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국민 인권을 위해 일하니 국민들이 관심 갖고 성원해주시길 바랍니다. 泰ㅈ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은 1941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해왔다. 1980년대부터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위기센터 자문위원,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장,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장, 전국 소기업연합회 소기업종합상담자문단장, 언론피해법률지원본부장 등으로 활동해왔으며, 2004년에는 세계 옴부즈맨협회 부총재에 올랐다.

조 위원장은 1988년 부천서 성고문 재정신청 사건의 공소유지 변호사를 맡아서 처리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이때 조 위원장은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 피해자인 권인숙씨를 2차례 정식 조사 때만 만나는 엄정함을 보이면서도 끈질긴 조사를 벌여 고문 경찰관의 유죄를 이끌어냈다. 조 위원장은 2000년부터 20004년까지는 자신의 고향인 광주지법 순천지원 고흥군 법원에서 ‘시골 판사’로 일했으며, 판사 생활을 마친 뒤에는 시골에서 그대로 눌러살았다. 2004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맡아 다시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 4월초 국가인권위원장을 맡았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마주보기를 끝내며




<마주보기>가 이번으로 끝난다. 실상 마주보기를 한 적은 드물다. 이번 마지막 마주보기가 그렇듯이, 마주보기가 아니라 ‘함께 보기’가 되곤 했다. ‘마주’ 보고 싶은 분들, 가령 정부나 열린우리당의 인사들은 이에 쉽게 응하지 않는 대신, ‘함께’ 볼 분들은 선선히 응했다. 왜 그럴까? 독자의 생각에 맡긴다. 나로선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 그동안 이에 응한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다른 방식으로 ‘마주’ 볼 기회가 있기 바란다.

기획위원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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