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탈출구 없는가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 ‘대부’
김수행 교수

국경을 넘어 퍼부어지는 자본의 융탄폭격. 온 세계를 무한경쟁으로 휘몰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와 직장은 물론 우리 안방에까지 침투해 있다. 삶을 초토화시키는 그 기세는 마치 대지를 휩쓰는 메뚜기떼의 공격같다. 자본은 자꾸 부자가 되어가지만, 노동자와 서민대중은 대량해고·비정규직·실업 등으로 빈곤과 불안의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벽을 뚫을 탈출구는 없는가? 홍세화 기획위원이 지난 11일 목련꽃이 피기 시작한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수행(62)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그 가능성을 찾아봤다.

홍 기획위원은 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비판해 왔고, 김 교수는 그동안 강단과 미디어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예고해왔다. 진보적 운동가와 백발의 노교수의 이날 대담은 ‘마주보기’라기 보다는 어쩌면 ‘함께보기’에 더 가까웠다.


김수행 신자유주의 횡포 극심 선진국부터 머잖아 붕괴

홍세화 ‘시장주의 우파’ 집권뒤 노동운동 갈수록 외면당해

홍세화 기획위원=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인간 본래의 탐욕을 공공성이나 양심 같은 것들로서 적절히 제어해 왔지요. 그런데 요즘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는 그런 제어장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교수님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것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수행 교수=신자유주의라는 게 자본주의의 불황을 극복해 보려는 정책으로서 등장한 것이에요. 20세기 들어 두번째 대불황을 겪으면서 이걸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지가 서구 자본주의에 가장 큰 과제로 대두됐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기업가에게 이익을 많이 주고, 그 이익으로 재투자를 하게 하고… 이렇게 해서 생산과 고용을 늘려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죠.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복지사회다, 사회보장제도다 하는게 사회적 합의였고, 완전고용이나 노동조합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게 정부의 몫이자 목표였지만, 그 후로는 불황극복을 위해 이런 합의와 구실이 축소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일어났습니다. 기업가·자본가에게 이익을 더 주려면 세금을 낮춰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회보장제도나 완전고용, 노조 권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해 그 정책기조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킨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화’라는 것의 핵심은 결국 선진국 자본이 세계 각지로 진출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다른 나라 시장을 뺏으러 나가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려면 남들이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 첨병이 바로 국제통화기금이니 세계무역기구니 하는 것들입니다. 세계 각 나라가 투자한 주식회사인 국제통화기금에서는 미국이 거부권을 쥐고 있어 다른 나라들이 꼼짝 못하게 되어있어요. 요즘은 ‘세계화’보다는 ‘제국주의화’라는 말을 경제학에서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홍/ ‘작은 정부’ 계속 들고 나오는데 민족국가 약화·제국주의 확장 의도
김/ 대량해고 하고나서 사회복지라니? 현 정부 복지정책 한계 드러난 것

=우리나라에서는 세계화란 말이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는데, 결국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관철을 아주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해 놓은 수사였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미국은 군사력에서 세계 1위잖아요?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는 걸 보면, 미국이 바로 ‘제국’이예요.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모든 나라가 미국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그러니까 다국적기업들은 모두 자기 모국의 힘을 믿고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겁니다. 세계화가 이뤄지면 개인의 자율성이 늘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데, 그보다는 거대한 나라의 기업과 시민들만이 세계를 마음대로 누비게 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정부의 축소를 주장하는 ‘작은정부론’을 들고 나옵니다. 다국적기업이 제국주의적 힘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보면, ‘작은정부론’이란 게 결국 민족국가의 틀을 약화시키고 제국의 힘을 키우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다국적기업의 힘이 강해지면 국민국가의 힘을 능가해서, 정부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민국가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미국이나 영국같은 국민국가가 다국적기업을 뒤에서 엄청나게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국가가 사라진다, 약화된다’하는 얘기는 후진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작은정부’라고 해도 우리와 외국(선진국) 사이에는 관점이 많이 다릅니다. 외국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우리는 ‘세금도 안 거두고 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갖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참여복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 실체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앞서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도 나름대로의 소임을 갖고 있었죠. 김영삼 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든가,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김정일 주석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들입니다. 노 정권은 사회의 기본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를 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부정부패를 없애고,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죠. 이걸 해내려면 노동자계급과 노동자 조직의 힘을 빌려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노 정권은 생각보다 노동자계급을 적대시하는 것같습니다. 노동자를 대량해고하고나서 무슨 사회복지가 있겠습니까? 노 정권의 복지정책의 한계가 여기서 확연히 드러나죠. 홍 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기업 쪽에 기울어져 있던 노사관계의 균형을 임기 마칠 때까지는 잡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철도·물류 파업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변하더군요. 노 정권의 권력 자체가 민중적이지 못했다는 점, 노 정권을 떠받치는 지지세력의 계급적 한계 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수구 언론과 미국의 입김도 있었을 것이고요.

=그동안 역대 정권이 내세운 복지정책의 기본은 ‘경제성장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란 것이었습니다. 기업에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것이죠. 복지는 가족이 담당해라… 이런 식이었는데, 복지는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담당해야하는 것입니다. 노 정권의 복지정책도 이전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모든 나라가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도 늘리고 그렇게 해서 고용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정책은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수출 늘리고 경쟁력 높이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노동자 임금 깎고 사회보장제도 줄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국내 시장을 엄청나게 줄이게 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죠. 모든 나라에서 국내 수요가 줄고 국내 시장이 좁아지면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신자유주의로 성공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노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생각을 바꿔야 해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 고소득층한테서 세금을 많이 거두고 군사비는 줄여서 못사는 사람에게 혜택을 넓히자, 이렇게 해서 국내시장을 키우는 것이 우리 경제가 발전하는 토대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답답합니다.” 홍 기획위원은 신자유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 비관적 우려를 나타냈다. “신자유주의 붕괴는 피할 수 없습니다.” 김 교수는 힘있는 어조로 낙관론을 폈다. 같은 지점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였다.

=우리나라는 총소득에서 사회구성원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장 분담비의 비율이 27%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 나라들은 45%에 이르고, 미국도 30%가 넘죠. 우리는 그조차 간접세 비중이 높습니다. 이걸 보면 우리 사회에는 분배정의·조세정의조차 제도화되어있지 않다는 겁니다. 도대체 어디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겁니까?

=우리는 역사 과정에서 국민들 사이에 ‘똘레랑스’나 동정, 연대의식 같은 것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6·25라는 동족상잔과 수십년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서로 ‘불쌍하다, 도와주자’하는 개념이 안 잡혀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이 사실은 사회보장의 합의를 만들어 내는 기본정신이거든요. 저는 요즘 굉장히 기분나쁜 게 하나 있는데, 삼성같은 기업이 큰 이익을 내고는 그걸 윗사람들끼리 갈라먹더라고요. 말이 안됩니다. 우리 역사나 문화·전통에 대해 근본적으로 한번 고찰해 봐야 해요. 2차 대전 때 영국 런던이 폭격을 당하자 영국 정부는 부잣집 자녀든 가난한 집 아이든 똑같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돌봐주었어요. 이게 상징하는 게 뭡니까?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고요,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생각을 해야 사회보장 개념이 굳건해 지는 겁니다.

=노 정권이 사회적 연대의 제도화라든지, 공공성과 사회정의의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는데, 이걸 저버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 거죠.

=노 정권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하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신자유주의 사상을 굉장히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 이미 한참 전에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을 찾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사회보장이란 게 없었죠. 상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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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에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이 우리 시장에 많이 침투했습니다. 배당을 통해 우리 부가 국외로 많이 유출된다는 우려도 있고요.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재벌’이 있는데요, 재벌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자본 혹은 우리 기업으로 보고, 이를 안고 가야할지….

=저는 재벌이 한국계 자본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재벌의 소유와 지배구조는 개혁해야 합니다. 총수의 후계자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 큰 기업을 운영하도록 두는 것은 나라 경제를 망치는 거예요. 미국 지이(GE)의 자회사 중에 금융회사들이 있는데, 지이의 총수익의 49%를 이들 금융회사들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어떻습니까? 생명·투신·카드회사 같은 금융 자회사들이 내는 수익은 삼성 총수익의 1% 정도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삼성에 자금 문제가 생기면 늘 계열 금융회사들이 돈 막아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삼성의 금융업 자체가 수익성도, 효율성도 없는 거죠.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을 보면, 우리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조건으로 금융시장 개방을 급속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런 정책을 추진한 정부의 핵심 정책 운영자들이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거든요. 그러니 참여정부 역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맞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굉장히 자유주의적이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방식 아닙니까? 교수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인데, 노 정권을 ‘좌파’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식 시장주의에 쏠려있습니다. 큰 문제입니다.

=노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 얘기를 들을 때 당혹스럽더군요. 노 정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저는, 분단 이후에 ‘반공주의 우파’가 집권했다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시장주의 우파’가 집권한 것이라고 봅니다. 반공주의 우파 집권기에는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인식되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았죠. 그런데 시장주의 우파정부 아래서는 노동운동이 오히려 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 분신이라니…”라고 말하더군요.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이제 우리 화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민주화 운동 세력이 노동자 대투쟁에 엄청나게 반대를 한 거예요. 그들의 반노동자 정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빈민·농민들이 갖고 있는 자기 정체성 인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구호에 대해 당연히 거부감을 느껴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이런 현실 속에서 노동자 의식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김수행 ‘빵을 키워놓고 난뒤 갈라먹자’
그런데 빵을 키워놓아도 누가 갈라줍니까?
노동자·시민 참여하는 자본주의 올 것
노정권, 서민대중 파트너로 안고가야

=우선 지난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출신 10명이 국회에 들어갔습니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고 있고, 거대 보수 언론의 힘도 조금씩 약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독도 문제로 일본과 마찰이 있는데, 이런 대외적인 문제 제기가 국내에서도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에 힘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미국의 이라크 파병·방위비 분담 요구로 인해서 반미 감정이 확산되면 이와 맞물려 국내 질서를 조금 더 공정하게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날 거라고 봐요. 이런 움직임이 모두 사회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겠습니까?

=정부가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것이 결국엔 성장중심을 말하는 것이죠. 국민들이 이런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선순환’이니 ‘소득 2만불’이니 하는 데에 현혹되고 있는 거죠. 실제로는 삶이 아주 팍팍해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자꾸 커지고 있거든요. 과거 정권이 ‘안보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면 지금은 ‘불안 이데올로기’인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들이 자아실현 같은 데에는 관심도 못 가지고, 심지어 젊은 대학생들도 취업걱정에 사로잡혀 있어요. 결국 경제동물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퍼지고, 계층 상승의 가망성은 보이지 않고 사회는 더욱 험악해지는 겁니다. 노동운동에서도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보다는 자본주의적 심성에 포섭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저는 좀 비관적인 편이예요.

=성장과 분배 문제를 말할 때 자꾸 이런 얘기를 합니다. ‘분배에 치중하다보면 성장을 못한다,’‘빵을 우선 키워놓고 난 뒤에 갈라먹어야 한다’라고요. 이런 얘기는 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늘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빵을 키워놓아도 누가 그걸 갈라줍니까? 아무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계속 구호만 나오는 거죠. 사실, 지금 같은 생산 수준에서 분배를 잘만 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소득이 1만달러라고 하면, 한달에 한사람의 소득이 대략 100만원이란 얘기고, 한가족이 4명이라고 할 때 4백만원이 되죠. 이렇게 계산하면 모두 먹고살 만한 소득이잖아요. 문제는 부가 집중되어있다는 겁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 보세요,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가고 자살하고 노인들은 외롭고…. 은행에 앉아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봐도, 일은 정규직보다 더 많이 하면서 봉급은 반인데다 사회보험 혜택도 못받잖아요.

=일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0%밖에 안돼요. 전체 노동자 가운데 이 10%는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고 자기 권리 옹호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들은 나머지 90%를 위해 뭔가 해낼 방법이 없어요.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이 자기 봉급 깎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지난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여 논란 때 민주노총 사람에게 “자꾸 노사정위원회 들어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어떻게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고 그들과 연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조 조직률 10%라고 하면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이 대기업에는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문제에서는 힘이 안됩니다. 또 정규직은 갈수록 줄어들지 않겠어요?

줄담배와 줄커피로 이어진 2시간30분의 대담 끝에,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제시했다. ‘노동자·시민·자본가가 함께 참여하는, 좀더 평등한 자본주의.’ 이런 세상은 언제쯤 오게 될까?

=민주노총으로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거론되도록 해야 할지 고민이 많더군요.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조직화가 잘 안 이뤄지고, 현재 법체계에서도 어렵고… 그래서 가능한 어떤 틀이라도 얻어내려고 한 것이 노사정위 복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에서는 노조가 힘이 셀 때에만 무언가 얻어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 대통령이 노동정책을 펼치면서 노조하고 상의하는 것 봤습니까? 그건 노조가 힘이 약하다는 뜻이예요. 힘이 약할 땐 타협으로는 별 소득이 없어요.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상층부가 이 문제를 좀 안이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아직 분배냐 성장이냐하는 틀거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입니다. 이 부가가치를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는데, 임금도 분배의 문제이고 이윤도 마찬가지예요. 이윤 중에서 사내유보와 배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분배입니다. 그런데 분배를 얘기할 때 항상 임금만 가지고 말합니다. 임금이 너무 많으니 깎자고요. 우리나라 노동자 임금은 노동생산성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타결되고 있습니다. 주주들이 배당을 많이 요구하는데, 이를 좀더 합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당을 줄여서 사내유보로 돌리고 재투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임금을 말할 때, 기업이 직접 노동자에게 주는 부분을 ‘직접적 임금’이라고 하고, 사회보장을 통해 노동자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간접적 임금’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노동자들이 병원비·교육비·연금 등 얼마나 많은 간접적 임금을 받습니까? 우리는 그렇지 못하죠. 간접적 임금으로 받지 못하는 부분은 직접적 임금으로 커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임금이 높다는 거예요. 모든 국민이 세금 잘 내서 사회복지를 늘리면 직접적 임금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죠.

홍세화 과거 정권이 ‘안보 이데올로기’ 를 퍼뜨렸다면
지금은 ‘불안 이데올로기’ 인 것 같아
노동운동에서도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보다는
자본주의적 심성에 포섭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교수님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변혁을 낙관적으로 보시는군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낙관하십니까?

=신자유주의로 인해 유럽에서는 실업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고 사회복지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행하기가 어려워졌어요. 5월에 있을 영국 총선에서는 아마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사회보장제도를 더 축소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할 거예요. 외국도 이런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선진국 쪽에서 먼저 무너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 후진국으로 신자유주의 해체가 넘어오겠죠. 그래서 우리가 자꾸 현재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잡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후진국에서는 선진국보다 더 빈부격차가 심하고, 실업자는 많고, 외국 자본의 횡포는 심해서, 반발이 거세질 것이고요. 결국 세계적인 민중연대가 상당히 진척될 가능성이 큽니다.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터져나오고, 후진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면, 신자유주의는 수년내에 막을 내릴 것이라고 봐요. 신자유주의를 이끄는 미국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옵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죠. 그래서 반전운동도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자본 쪽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예요. 자본 이동을 너무 자유롭게 해서 금융공황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규제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런 쪽이 힘을 얻을 것이고요. 또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요구할 거예요.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그 안에서 수익성 위주로만 가는 방식에 규제를 가하게 될 것이고, 생태 문제를 포함해 모든 결정에 더 많은 사람이 주체로 참여하는 경제형태로 갈 것입니다. 복지국가가 되살아나면서 좀더 평등하고, 좀더 많이 참여하고, 계획성이 더 많이 도입되는 자본주의입니다. 복지국가의 개념에서, 기본적으로는 자본가가 주도권을 갖겠지만,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자본주의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해결되고, 우리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개선되길 바랍니다. 경제학자로서, 이런 개선을 위해 노 대통령에게 충고 한마디를 던지신다면요?

=노 정권의 정치적 기반은 사실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민주적이고 평화롭고 공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노 정권이 서민 대중을 자기 파트너로 삼을 수 밖에 없어요. 노동자 계급, 노동조합의 조직된 힘을 안고 가야합니다. 그들과 함께 기업도 개혁해 나가고, 전체 사회도 바꿔나가는 게 올바른 길입니다. 노 정권이 한국사회에 이바지하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정리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990003%%김수행 교수는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이 성서처럼 읽었던 마르크스 경제학의 고전 <자본론>의 국내 첫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다. 61~67년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석사과정을 마쳤다. 외환은행에 입사해 런던지점에서 일하다, 당시 국내에서는 금서였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접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런던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비주류 경제학’ 연구에 들어갔다. 7년만에 석·박사를 마치고 귀국해 82년부터 한신대에서 교수직을 시작했다가 학장 불신임안 사태로 해직됐다. 89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옮겨 지금까지 강단에 서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마르크스 경제학’‘마르크스경제학 특수연구’ 등 학부·대학원에서 3개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제변동론> <정치경제학 원론> <알기쉬운 정치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의 쟁점들> 등이 있다. <자본론>은 89~90년 3권이 번역·출간됐다.


기사등록 : 2005-04-18 오후 05:11:00기사수정 : 2005-07-15 오전 01: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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