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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4.11(월) 16:30

군주제 폐지론 영국연방 4개국 확산


△ 찰스 왕세자의 재혼을 둘러싼 논란이 군주제 폐지운동에 힘을 실어 주면서 군주제 존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처칠박물관 앞을 걷고 있다. 런던/AFP 연합



찰스왕세자 재혼 계기로 반대 여론 늘어나
“군림하되 통치않는 전통 존중” 옹호 우세

“이젠 왕실의 광대극을 끝낼 때입니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스콧츠맨> 등 지난 7일치 영국 주요 일간지에 실린 광고 문구다. 영국의 대표적인 공화주의 주창단체인 ‘리퍼블릭’은 일간지에 영국 군주제를 폐지해야 된다며 이런 광고를 실으면서 동시에 이메일과 2만장의 홍보 전단을 뿌리는 등 본격적인 군주제 폐지운동에 돌입했다.

이들이 말하는 ‘왕실의 광대극’이란 영국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을 둘러싼 해프닝을 일컫는다. 찰스 왕세자는 재혼 반대 여론에다 성공회의 종교식 결혼 거부, 왕위 계승 합법성 논란 등도 모자라 때마침 선종한 교황 장례식으로 인해 결혼식을 4일 앞두고 날짜까지 바꾸는 등 한바탕 소동을 치른 끝에 9일 겨우 재혼에 골인했다.

이런 왕세자의 불행한 우여곡절이 군주제 폐지운동에 힘을 실어 주면서 엉뚱하게 군주제가 유탄을 맞아 존폐 논쟁의 물꼬가 텄다.

폐지론쪽 ‘왕실의 광대극’ 맹공

“우리는 백성이 아니라 시민이다”=리퍼블릭은 “우리는 백성이 아니라 시민이어야 한다”며 “군주제는 비용이 많이 들고 특권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또 찰스 왕세자 재혼에 이르기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이런 우스운 짓들이 영국민으로 하여금 군주제의 부적절성을 깨닫게 만들었다”며 “민주화 시대에 사람들은 책임있는 국가 원수나 군주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윈저 가문이 자동승계해가는 군주제 대신 선거 등을 통한 국가원수 선출제 도입을 요구하면서 다음달 치러지는 총선에서도 이 문제를 쟁점화한다는 전략이다.

리퍼블릭은 1983년 창설 당시부터 군주제 폐지운동을 벌였으나, 그동안 워낙 왕실의 인기가 높아 그다지 반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찰스 왕세자의 재혼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폐지운동도 탄력을 받고 있다. 1981년 찰스-다이애나 결혼식에는 3500명의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초청되고 70만명의 영국 시민들이 몰려 ‘세기의 결혼식’을 기록했다. 반면, 9일 열린 재혼식엔 겨우 30명의 하객이 참석하고 2만명의 시민이 식장 주변에 모이는 등 ‘초라한 결혼식’에 그쳤다.

호주·캐나다 등 연대기구 발족

지난 2월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3%가 ‘더는 군주제가 필요없다’고 답했고, 3월 <데일리 메일> 조사에선 28%가 ‘필요없다’고 답하는 등 유례없이 폐지 여론이 상승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군주제 폐지운동은 영국을 넘어 엘리자베스 여왕 2세를 군주로 받들고 있는 영국연방 4개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리퍼블릭’, ‘오스트레일리아 공화주의 운동’, ‘캐나다 공화주의를 위한 시민들’과 ‘뉴질랜드 공화주의 운동’ 등 1980∼90년대에 발족한 공화주의 운동단체들이 올해를 군주제 폐지 연대운동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처음으로 뭉쳐 7일 연대기구를 발족시켰다.


△ 영국 왕실이 2003년 7월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왕세자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으로, 앉아 있는 여왕 뒤에 찰스 왕세자와 그의 맏아들 윌리엄 왕자, 여왕의 남편 필립공(왼쪽부터)이 나란히 서 있다. 런던/AP 연합

“우리는 백성이자 시민이다”=그러나 아직은 군주제를 옹호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영국 <비비시방송> 인터넷판이 지난 1월21일 군주제 폐지를 둘러싼 찬반 의견을 모은 결과 반대 의견이 월등히 우세했다. 군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군주제이지만 투표권이 있고 언론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 ‘영국 고유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해야 한다’ ‘영국 민주주의의 아름다움은 군주제 아래서도 개인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사실상 권력은 시민과 의회에 있다’ ‘우리는 시민이자 동시에 백성이며 그것이 영국의 고유 문화’ 등이다.

<데일리 메일>과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이런 여론을 반영해 리퍼블릭의 광고를 거부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왕실 인기

영국에서 왕실이 이렇게 인정받고 유지되는 배경에는 왕실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온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도덕적 책무)를 성실히 실천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모병제인 영국에서 왕족 대부분은 군인으로 복무하고, 평소 대부분의 시간을 자선사업에 할애한다. 또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시절에 대한 향수도 군주제를 옹호하는 배경이 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상징적 권력은 막강…16개국의 원수

영국 입헌 군주제란

역사적으로 군주제란 한 사람이 주권을 가지는 정체로 국민주권으로 대표되는 공화제와 구별되는 제도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유럽에서 군주제가 아닌 나라는 프랑스·스위스·포르투갈 등 3개국뿐이었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군주제가 사라졌다. 지금도 군주제가 살아 있는 나라는 유럽에선 영국·네덜란드 등 10개국, 아프리카에선 모로코 등 3개국, 중동에선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이다. 아시아에선 일본·타이 등 5개국이다.

영국의 절대왕정은 대헌장(1215년), 시민전쟁(1642∼1657년), 명예혁명(1688년) 등을 거치면서 점점 약화돼 ‘입헌군주제’라는 현재의 형식에 안착했다. 세습되는 군주는 있지만 의회나 내각의 결정을 형식적으로 재가하는 의례적인 존재에 불과해 사실상 주권은 의회를 선출하는 국민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군주의 ‘상징적인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군주는 국가 대표이자 군의 최고 통수권자이면서, 행정, 사법, 입법부의 수반인 동시에,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수장,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등 16개 영국연방 국가의 국가 원수다. 영국 의회의 개폐 및 모든 외교 행사를 주관하며, 공무원들과 법관, 군인, 성공회 주교들은 군주에게 충성 서약을 해야 한다.

강김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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