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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3.28(월) 16:39

군 달라져야 한다 개혁 외쳐온 표명렬 예비역준장


군대를 제대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악몽을 꾸는 남자들이 있다. 군 폭력에 의한 상처와 정신적 모멸감은 쉽게 씻어지지 않는 기억이다. 분단된 땅에 사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군 복무는 훈장이면서 족쇄다. 개인에게뿐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에도 수십년의 군사독재와 군 부패는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개혁의 마지막 관문’이라는 군 개혁은 가능한 일일까? 지난 23일 홍세화 기획위원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정훈감을 지내고 예편해 줄곧 군 개혁을 외쳐온 표명렬(66) 예비역 준장을 만나 군 개혁의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진보적 지식인인 홍 기획위원이 보수의 상징인 군 출신의 표 예비역 준장과 마주하는 것이 어색할 것이라는 우려는 금세 깨졌다. 홍 기획위원을 ‘파리의 택시 운전사’로 기억하는 표 예비역 준장은 홍 기획위원에게 “요즘은 택시운전을 안 하느냐”며 농담을 던진 뒤 마치 오랜만에 만난 동지처럼 가족사와 세상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홍세화 개혁 물꼬는 텄는데 왜 지체되는 겁니까

표명렬 “군대에 무슨 인권” 일제·냉전논리 탓 사병에 인분 먹이는 사태까지 온거죠

홍세화 기획위원=우리 사회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검찰·언론·사학 개혁의 필요성에는 국민들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성역이라면 역시 군대와 종교계가 아닐까 생각해요. 종교계 개혁은 아직 근처에도 못 갔고, 참여정부 들어서 군 민주화는 실마리가 보여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데, 그 물꼬를 트는 데 표 장군께서 큰 역할을 하신 걸로 생각됩니다. 군 개혁을 이야기할 때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한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표명렬 예비역 준장=군 개혁은 흔히들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군 개혁처럼 쉬운 게 없습니다. 일반 사회를 개혁한다고 할 때는 여러 집단들 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게 많잖아요? 또 기득권 세력이 자기 가진 것을 안 놓으려고도 하고요. 그런데 군 개혁은 완전히 제도의 문제입니다. 바람직한 모형을 그려놓고 그것과 관련된 제도, 예를 들면 인사제도나 교육·감찰·내무생활 제도 등을 고쳐나가면 개혁이 이뤄집니다. 현재 우리 군대에 문제가 뭐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군의 모습은 이렇다, 그래서 이렇게 제도를 고치자 해서 그대로 시행하면 개혁이 시작된다는 거죠. 공무원 사회에서는 장관이 혼자 바꾸자고 해도 잘 안되지만, 군대는 명령체계가 엄정하고 상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제도를 바꾸면 확실히 바뀝니다.

=의지만 있으면 군대도 개혁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들으니 좀 안심이 됩니다.(웃음) 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이런 제도 개혁이 왜 잘 안 될까하는 점이 아쉬워요. 물꼬는 텄지만 어디서 개혁이 지체되는 겁니까? 또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홍/ 종교와 더불어 마지막 성역 ‘군대’, 참여정부들어 민주화 실마리보여
표/ 이해상충 일반사회 개혁과 달라, 군대개혁은 완전히 제도의 문제

=개혁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헤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 첫 과정이 어렵습니다. 문제를 들춰내야 하니까 과거 군을 이끌어왔던 분들의 반발이 심하겠지요. 군은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거든요. 전역 후 함께 관혼상제 다니고 운동, 바둑, 여행하며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데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거든요. 두번째의 어려움은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혼선입니다. 개혁이란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지금까지의 군대, 군기, 상관, 내무생활 등을 털어놓고 재구성하는 혁명적 작업입니다. 이것은 군대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한국군의 군사체계는 미군을 모방해 왔기 때문에 미군에 없는 분야는 관심을 쏟지 않아요. 미군은 군대 문화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일단 군 개혁을 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군 개혁에 대해 막연하게 얘기를 합니다. 누구는 프랑스식 개혁을 참고하겠다고 하는데, 선진국에서 군 개혁이란 무기 체계와 군대 구조·전략을 바꾸는 군사작전 분야의 개혁을 말하는 거예요. 그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분야인 거죠. 이런 주장은 오히려 개혁을 흐리게 합니다. 내가 말하는 군 개혁의 대상은 ‘군대 문화’입니다. 이건 근본적인 개혁입니다. ‘군대에 무슨 인권이 있냐’‘군대란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식의 사고방식, 일제 시대의 군대 문화가 문제라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은 군대 가서 다 망쳐서 돌아와요. 우리 민족의 비전은 통일인데, 북한에 대한 적개심만 늘어서 돌아옵니다. 30년 전 냉전시대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군대에서 지금도 가르칩니다. ‘북한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는 생각만 배우고 오는 거죠. 이런 증오심을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저는 우리 군대가, 히딩크가 감독했던 축구팀처럼 되어야 한다고 봐요. 히딩크 감독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수들에게 인간적 모멸도 주지 않았죠. 그러니 신나게 연습하고 결국 승리를 일궈내지 않았습니까?

육사 출신으로 드물게 군 개혁을 주창해 온 표 예비역 준장은 요즘 자기 주위에서 느껴지는 작은 변화들에 기쁨을 나타냈다. 그가 주장하는 군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젊은 육사 후배들이 하나둘씩 그에게 지지를 보내온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동안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을 표 준장에게 이보다 더 큰 힘이 없을 터이다.

=우리 군대를 히딩크 축구팀처럼 바꿔야 한다는 발상은 무척 신선하게 들립니다.

=축구 감독처럼 군은 윗사람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국군 통수권자의 철학과 신념이 어떠하냐가 중요하죠. 노 대통령은 과거 누구도 말하지 못한 주한 미군의 문제를 포함한 자주적 안보관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주창해 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군 개혁의 큰 물줄기가 형성되어 갈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미국 네오콘이나 돈·이권에 움직이는 극우파들에게 우리 군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돼요. 조국과 민족을 위한 군대여야 합니다. 고급 간부이든 사병이든 민족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이 없으면 뭣하려 나라를 지킵니까? 21세기 열린 시대에 국수주의적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군대만큼은 다릅니다. 군대에 가면 민족의식이 함양되어 나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뭡니까?

=일본 군대 출신들이 고의로 그렇게 만든 거죠. 항일 무장투쟁의 빛나는 역사를 다 빼버리면 민족적 자존심을 도대체 어디서 얻겠습니까? 제가 처음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 너무나 놀랬어요. 우리 군대의 뿌리는 광복군인데, 그런 얘기는 하나도 없었거든요. 이동녕 선생은 가진 돈 다 털어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잖아요. 그곳 출신들이 벌인 전투가 바로 저 유명한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였잖습니까? 이런 위대한 우리 민족의 얘기를 육사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는 겁니다. 친일분자들이 자신의 과거가 들통날까 두려워서죠. 그러니 기껏 신라 왕실 지키던 ‘화랑도’나 들먹여 혼을 빼고 생도들을 자신들의 후계자로 만드는 세뇌 교육에만 집착한 겁니다.

=표 장군께서는 육사 출신이면서 사관학교 개혁을 말씀해 오셨는데, 사관학교 개혁이 군 개혁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점입니까?

=군대는 간부들에 달려 있습니다. 간부가 변하면 군대가 달라져요. 사관학교의 간부 양성과정이 의식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스페인이 프랑코 독재로부터 민주화되었을 당시 군대를 개혁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았고, 그 일순위가 바로 사관학교 훈육 개혁이었습니다. 사관학교 출신들이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아놓고는 재력과 권력을 다 쥐고 있었거든요. 훈육 시스템을 싹 바꿔서, 인권을 유린하고 부패한 선배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도록 만든 거죠. 역사정리를 통해 교육한 겁니다. 우리는 문민정부 때가 바로 호기였는데 하나회 조직을 파헤치는 숙군 작업을 하느라 제도개혁은 손놓고 있었습니다. 육사는 군의 기둥으로 커갈 간부 중의 간부를 양성합니다. 그런데 학군단, 3사관학교, 학사 출신과 구별이 잘 안 된다고들 해요. 민족의식이 뛰어나지도 않고, 민주의식이 투철하지도 않으며 병사들로부터 존경받는 것도 아니랍니다. 특별히 구별되는 것이라고는 경쟁심이 유별나 진급에 민감하고, 육사 출신 선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민족적 자존심과 자신감이 가장 희박한 냉전 극우집단의 중심에 육사 출신 예비역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민주 발전의 싹을 짓뭉갠 5·16을 성공하게 만들었고, 12·12 군사반란을 주도했으며 광주학살을 주동했습니다. 이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내려 생도들이 이로부터 당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럼, 육사의 교육 체계는 누가,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다고 보십니까?

=국방장관이 참모 총장에게 고치라고 하면 육사교장에게 지시합니다. 육사교장은 다시 생도대장에게 지시할까, 교수부장에게 지시할까 하다가 통상 박사들이 많은 교수부에 임무를 줍니다. 그런데 그들은 대개 교수부의 학과와 교수 정원 늘리는 쪽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사관학교 훈육개혁은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적 관심의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합니다. 군에만 맡겨서는 어렵습니다.

홍세화 육사출신이 사관학교 개혁 주장했는데

표명렬 “군대만은 민족의식 지녀야 하는데 친일장교들의 육사교육 부끄러워”

=육사 출신인 지만원씨의 친일적인 발언이 최근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더군요. 육사 출신인 지씨의 이런 친일적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서글퍼지기도 하고요. 민족의식을 전혀 심어주지 않은 육사 훈육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민족적 자부심과 자신감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육사는 간부의 모범을 육성하는 곳인데 단 한사람이라도 그런 분이 나온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빨갱이들의 사주에 놀아난 짓이라며 김대중 대통령을 색깔 칠하는 망발을 늘어놓고 있을 때, 육사출신들은 그를 영웅시했습니다. 육사 훈육개혁 참으로 시급합니다.

=표 장군께서는 ‘사병인권법’을 만들자는 제안도 내놓으셨는데, 이게 군 개혁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제가 말하는 군 개혁의 방향은 첫째, 민족의 혼이 살아있고 민족정기가 바로선 ‘민족의 군대’입니다. 둘째는, 인간존엄의 민주적 가치를 지향하는 ‘민주군대’입니다. 군대는 목숨을 바쳐서 남의 목숨을 노려야하는 직업이죠. 인간 생명을 다루는 일입니다. 때문에 군인이야말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남달라야 합니다. 제주, 거창, 여수, 순천, 광주 등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군인의 본분을 저버린 사건이었죠. 일본 앞잡이와 정치군인들이 저지른 짓인데도 군은 그들의 물귀신 작전에 포로가 되어 학살의 불가피성만을 주장해 왔습니다.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사병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일벌백계니 절대엄금을 아무리 외쳐도 그때뿐입니다. 얼마전 장교가 사병들에게 똥을 먹인 일이 드러났는데, 그걸 보고 현역 장군·장교들 중에 놀라움을 표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군대가 원래 다 그런거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니까요. 사병의 인권은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는 식이죠. 아주 심각합니다. 그러니 이를 법으로 만들어 철저히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사병들은 군대에 가서 모멸감을 느끼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고요.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요즘 일선에서 사병들에 대한 인권보호가 어느 정도나 이뤄진다고 보시나요?

=지휘관들이 워낙 강력하게 강조하니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혹자는 군대가 마치 사고 안 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되었다지만, 잘못 정착된 문화와 관습의 뿌리를 뽑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쉽겠어요? 멀쩡한 신사도 예비군복만 입었다하면 아무 곳에서나 소변보는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군대생활에 대한 추억이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직업 간부들의 한심한 작태, 비인격적 대우의 상처 등이 떠올라서 그럴 것예요. 며칠 전 어느 기업체에서 특강을 했는데 한 학군단 출신 간부가 ‘큰일났다, 후방의 한 부대에서는 병장이 일등병에게 존댓말을 시킨다고 한다”고 걱정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고 쾌재를 불렀어요. 사실 20년 전 제가 정훈감 하고 있을 때 제안했던 것이었거든요. 군대는 사병들을 위한 군대이기도 해야 합니다. 군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사병도 국민이거든요.

표/ 많은 사병들 모멸감에 목숨끊어, 일시적 처방 말고 ‘인권법’ 제정해야
군 통수권 대통령 문제의식 지녀야
홍/ 군대 민주화·사병인권보호 차원,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도 병행돼야

=육사뿐만 아니라 사병들에게도 군대는 하나의 교육기관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런 교육기관의 프로그램을 바꾸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그렇습니다. 군은 국민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 교육기관입니다. 친일분자들이 민족정신을 싹트지 못하게 하는데 잘 이용했지요. 군부독재 세력도 정권안보를 위해 엄청 활용했고요. 그 관성이 아직 남아있어서 지금도 군대만 갔다오면 대북 적대의식, 무조건 미국 맹신 등 냉전적 사고를 하는겁니다. 지금은 육사 생도 교육이든 사병들 교육이든, 과거 냉전·수구세력과 조선일보가 교육을 담당하는 거나 다름 없어요. 고급 장교들은 “우리 국민들은 들쥐 같으니까 시키면 찍소리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으니까요. 내가 잘 아는 어떤 장군은 “나는 엠16 소총 하나 준비해 놨다. 김정일이 내려오면 그 총으로 쏴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말을 공식 석상에서 했답니다. 군에서 존경받는 인물인데도 이렇습니다. 군인에게 준 총은 국민이 준 총입니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준 게 아니에요. 제가 고급 장교들을 만나서 논리적으로 토론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말리더군요. 생각이 완전히 굳어있는 사람들이라면서요. 하지만 이 문제는 아주 간단히 바꿀 수도 있습니다. 군 통수권자가 ‘아직도 냉전시대 교육을 시키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한마디 하면 됩니다. 아쉽게도 대통령이 여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장성 진급 비리로 우리 사회가 시끌시끌했습니다만,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직업 군인의 최고 관심은 뭐니뭐니 해도 진급이죠. 그렇지만 진급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서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나버린 것처럼 절망하는 진급 문화가 문제입니다. 친일분자들과 군부독재 세력들이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진급시키고 나머지 간부들은 무한 경쟁 속에 몰아넣어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데 진급제도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니 진급제도가 간부들의 생각과 행위를 바람직한 길로 나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국방부에서 획기적으로 개혁한다니 기대해 보지요.




표 예비역 준장이 꿈꾸는 군대는 한마디로 민족의식과 인권이 살아있는 군대였다. 민족과 인권을 살리려면 육사를 개혁하고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이를 군에서 보내 누구보다 군을 잘 아는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충고를 던졌다. “군 통수권자가 관심을 갖고 한마디 하세요. 그럼 군 개혁 시작됩니다.”

=말씀을 들으니, 군 개혁에 군 통수권자의 의지와 문제의식도 필요하지만, 군 고급간부들이 잘못된 의식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란 생각이 드네요. 결국 문제는 그들이 왜 극우화되었는가 하는 점이고 이는 분단상황과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는 듯합니다. 분단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어떤 시각으로 봐야 적절하다고 생각하세요?

=한-미 군사동맹을 처음 맺었던 50년 전과 지금은 세상이 확연히 달라졌지 않습니까? 국가적·국민적 자존심을 손상하지 않는 동등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상당히 이루어져가고 있다고 봅니다. 주권국가가 국가안보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이익을 추구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과거에는 그렇지 못 했거든요. 미국이 없으면 안보고 뭐고 없다는 식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알 만한 것은 다 알거든요. 인터넷 시대가 되어 속일 수가 없어요. ‘강대국 공포’라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군사강국입니다. 초정밀 타격의 엄청난 파괴력과 신속 기동력의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외 주둔 미군의 운용 전략을 바꾸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고정 배치했던 미군을, 필요할 경우 다른 나라에 투입할 수 있도록 바꾸고 있습니다. ‘전략적 유연성’이니 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내용을 변경하려 하고 있습니다. 북한만을 공동 적으로 하는 주한 미군의 성격을 이런 식으로 전환하면 큰 문젭니다. 중국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요. 과거 같으면 미군을 빼겠다고 으름장 놓아 관철할지 모르지만, 이젠 우리도 호락호락하지 않지요. 나갈 테면 나가라고 해보세요. 안나갑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주둔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다 압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한 미군이 동북아의 평화를 깨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북한의 위협은 사실 우리 힘만으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이 군축도 하며 신뢰를 정착하고 평화를 확대해 가야 합니다.

=앞에서 우리 군대가 민족이 배제되고 인권이 취약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래서 사병인권법 말씀도 해주셨는데, 한편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선 징병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나 국민의식이, 아직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요. 사상의 자유라는 높은 민주적 가치보다는 병역의 형평성 문제를 중시해 거의 비판적인 것 같아요. 그동안 병역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습니까? 불신과 피해의식이 만연해 있거든요. 사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살이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는데도 이해하려들지 않아요. 앞으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시민문화가 성숙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법안이 통과되면 바람직한 여러 변화가 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이 군 민주화라든지, 사병 인권보호를 더 가속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요?

=글쎄요, 사실 모병제도에 관련된 병역 문제는 순수 병무 행정사항이거든요. 군 내부의 개혁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민주화 수준이 그 만큼 진전되어 간다는 면에서 군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민주적 문화를 확산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 군에게는 인권과 민족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군은 이런 면에서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우리가 화력이 북한에 비해 월등해도 정신력이 약해 심각한 상황이 아니냐 미군 없이는 어렵다. 이런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은 잘못된 점을 밝혀 정상화하고 고쳐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군의 잘못된 점,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하여 말하게 되는데요, 우리 군은 장점도 아주 많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그토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열심히 받아 전투력이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미군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이 놀랍니다. 월남전 때도 그랬어요. ‘민족’ ‘인권’을 불어넣어주면 억지로 힘을 들이지 않고도 훨씬 더 잘 할 수 있고, 국민의식 형성의 파급효과가 엄청 크다는 것이지 그것이 당장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군대가 불행했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전투력은 엄청 강합니다. 북한은 무기도 무기거니와 유연성·융통성이 부족해요. 아이디어와 창의력 발현 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비해 군사력에서 약하지 않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알지 않습니까? 정보화 시대입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이 중요한 전력입니다.

정리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정훈감 예편뒤 군 문제 평론활동
5·18 학살 문제제기 좌천되기도

표명렬 예비역 준장은 전남 완도 출생으로, 195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에 62년 육사 18기로 임관했다. 65년 중위 시절 베트남전에 1차 전투부대 소총중대 부중대장으로 참전했다. 귀국한 뒤 전투병과를 버리고 정훈병과를 택해 대부분 군 복무기간을 정훈장교로 지내다 87년 육군본부 정훈감으로 예편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대만 국방부 산하 정치작전학교를 수료했으며,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전공했다. 육사 생도 시절 “민족의식 교육이 부족함을 느껴” 민족일보를 구독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에 문제를 제기하다 보안사에 의해 좌천당한 일화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2003년 군 개혁의 필요성을 제시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란 책을 펴내는 등 언론·출판을 통해 군 개혁을 부르짖는 글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지난해에는 아들 정훈(36·출판평론가)씨가 “할아버지는 남로당 간부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좌익이었다”는 내용의 책을 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현재 군사평론가·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성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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