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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3.21(월) 16:08

미국 ‘생명 창조론’ 보수물결 타고 확산


△ 지적설계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필립 존슨 (오른쪽)이 자신의 책 <심판대 위에 선 다윈>을 든 독자와 함께 웃고 있다.



대법 1987년 “교과과정 창조론 교육 위법” 불구
부시 재선뒤 기독교계등 공교육 전파 달려들어
과학계·진보진영 “진화론 압도적으로 지지” 반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교육·과학계에도 거센 보수의 바람을 불러왔다. 공화당 재집권 이후 학교교육에서 생명의 기원을 어떻게 가르칠지를 놓고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엔 창조론의 변형인 지적설계론이 떠오르며 공립학교에 폭넓게 확산될 조짐을 보여, 과학계와 진보진영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적설계론의 토대= 생명의 출현이나 지금의 종들이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지적인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게 지적설계론의 핵심이다.

자연도태에 의해 생물이 진화해 왔다는 다윈의 학설(진화론)은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 종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설계론은 주장한다. 단적으로 원숭이로부터 인간이 진화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우주는 생물체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누군가에 의해 잘 설계돼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 동정녀가 출산” 79%

1991년 필립 존슨의 책 <심판대에 선 다윈>이 출간된 이후 이 학설은 미국 기독교계와 보수파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됐다. 지적설계론은 ‘지적인 존재’ 또는 ‘설계자’가 하나님이라고 못박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론에 대한 반발을 희석하기 위한 것일 뿐, 사실상 창조론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게 과학계와 진보 진영의 비판이다.

보수의 물결을 탄 확산= 미국 대법원은 1987년 “학교 교과과정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는 건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최근 미국 법원의 보수화 경향과, “아직 진화론에 대한 결론이 난 게 아니다”라는 부시 대통령의 말에 힘입어 이 판결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2002년에 전략을 수정했다. 학교에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진화론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으니 지적설계론 등 여러 이론을 보여주며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적 설계자’가 하나님인지에 관한 논의는 뒤로 미뤘다. 이런 논리는 학부모들의 지지를 쉽게 얻으며 여러 주에서 논쟁을 불러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캘리포니아는 현재 주 교육위원회가 지적설계론 채택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에선 주 의원들이 지적설계론을 가르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오하이오와 미네소타, 뉴멕시코, 오하이오 등은 이런 내용의 법안을 이미 통과시켰다. 테네시주에선 과학 교재에 ‘진화론은 아직 이론일 뿐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자는 제안이 올라와 있다.

여기엔 미국사회 저변에 깔린 기독교 문화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실시한 <뉴스위크>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들의 79%가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또 62%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외에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다.

보수-진보 ‘가치전쟁’ 첨단에


△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을 확립한 찰스 다윈(1809-1882). <한겨레> 자료사진

가치전쟁의 첨단에 서다= 요즘 들어 부쩍 지적설계론 주장이 거세지는 것은 미국 정치지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수 진영이 이 문제를 진보와의 ‘가치전쟁’(컬처 워)의 핵심으로 삼고 나선 것이다. 베일러대학 교수인 배리 핸킨스는 “기독교 우파가 최근 각종 이슈에서 약진하면서, 이 문제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달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는 곳이 캔자스 주이다. 이곳에선 1999년 주 교육위원회가 진화론 외의 다른 이론을 가르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2001년 새로 구성된 주 교육위는 이 결정을 철회했다. 지난해 11월 대선과 함께 실시된 교육위원 선거에서 다시 보수파가 다수를 점하자 결정은 또한번 뒤집어졌다.

지적설계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디스커버리 연구소’는 부유한 보수주의자인 하워드 아맨슨으로부터 매년 150만달러의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보수 이념의 확산과 지적설계론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남부 침례교 목사인 테리 폭스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낙태를 하는 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진화론에 더욱 큰 회의를 품는다면 진보주의는 사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학계와 진보 진영의 반격= 지적설계론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곳은 미국의 저명한 과학단체인 국립과학원과 국립과학교육센터다. 이들 단체는 “진화론이 현존하는 이론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유용한 이론이다. 우리는 압도적인 과학적 합의로 이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교 분리원칙 위배”

펜실베이니아 주의 도버 교육위원회가 지적설계론을 중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자, 8명의 학부모들이 소송을 냈다. 학부모를 대신해 소송에 나선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지적설계론은 하나님에 의해 모든 종이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의 세속적 형태”라며 “이걸 교육에 도입하는 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한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지난 1월 잇따라 사설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진화론이 단지 하나의 이론이라면 지적설계론은 아직 이론도 아니다. 진화론을 둘러싼 문화적·종교적 논란을 종교나 역사 과목에서 다룰 수는 있겠지만,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을 과학적 대안으로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다윈의 진화론에 도전하는 ‘지적설계론’의 주창자들은 학술을 가장한 회의와 정교한 홍보를 이용해 옛날의 창조론보다 더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의 범위 밖에 있는 주장이거나 종교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지적설계론을 과학으로 가르친다면 미국의 과학계는 멀지 않아 세계를 더이상 이끌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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