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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14(월) 18:05

자생과 이식의 코드 임화의 ‘이식문학론’


일제시기 최고의 권위 있는 문사였던 이광수는 “조선문학이란 무엇이뇨, 조선문으로 쓴 문학”이라고 단언하고, 조선시대 시조는 물론 심지어 <삼국유사>까지도 조선문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이에 반해 임화(1908~53)는 “문학은 언어 이상의 것으로, 하나의 정신문화인 점을 생각할 때 한문으로 된 문학은 조선인의 문화사의 일 영역”임을 분명히 했다. 이광수가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대표였다면 임화는 좌파 문인 진영의 지도적 이론가였다.

임화의 주장은 ‘이식문학론’이라는 그의 독특한 문학관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20대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서기장을 역임하고 북한에서 ‘미제의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한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만큼이나 언제나 논쟁을 몰고 다녔다. 그의 신문학은 정확히 근대문학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근대문학이란 “단순히 근대에 쓰여진 문학을 가리킴이 아니라 근대적 정신과 근대적 형식을 갖춘 질적으로 새로운 문학”이었다. 문제는 근대적 신문학이 조선의 고유한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요컨대 “신문학이 서구적인 문학장르를 채용하면서부터 형성되고 문학사의 모든 시대가 외국 문학의 자극과 영향과 모방으로 일관되었다 하여 과언이 아닐 만큼 신문학사란 이식문화의 역사”라는 것이다. 물론 이식의 과정은 “정치적 침략의 정신적 표현”이기에 제국-식민 관계를 없애고선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 과정은 식민모국 일본의 메이지, 다이쇼 문학사에 직결되는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신문학은 ‘일본문학을 통해서 서구문학을 배웠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식과정은 일방통행이 아니었다는 것이 임화의 지적이다. 이식은 “자기 문화의 유산을 토대로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좋은 의미이고 나쁜 의미이고, 양자의 교섭의 결과로서 제3의 자(者)를 산출하는 방향”을 취한다고 한다. 나아가 문화교섭은 “일견 그것이 순연한 이식문화사를 형성함으로 종결하는 것 같으나, 내재적으로 또한 이식문화사를 해체하려는 과정이 진행”되는바, “문화 이식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반대로 문화 창조가 내부로부터 성숙”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임화는 이광수의 극단적 단순구도를 넘어 조선문학에 대한 폭넓은 사유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임화의 이식문학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아시아적 정체성론에 근거한 것이 사실이다. 독자적 근대화가 불가능했기에 그 정신적 반영으로서 문화, 문학상의 이식성이 지배적 양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의 ‘내재적 근대화의 길’은 임화를 넘어선다기보다 그 배후로 숨어드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자생과 이식이 이항대립을 이루는 한 근대(화)라는 목적의 수단이 될 뿐이기에 선험도식으로 귀착할 뿐이다. 임화는 자생과 이식의 교섭을 통해 ‘제3의 차원’을 사유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황병주/한양대 강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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