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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토론과 논쟁 등록 2004.05.31(월) 22:21

부르조아 문화타락 원인 자본주의서 찾은 크라우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친 유럽의 혼돈기 속에서 카를 크라우스(1874~1936)는 촌철살인의 풍자와 비타협적인 논설을 통해 당대의, 특히 자신의 활동무대인 오스트리아의 사회·문화적 ‘타락’과 위선을 질타하며 동시대인들의 도덕적 각성을 촉구했다.

크라우스는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당대의 (비)문화에 논쟁의 비수를 들이댄다. 그가 생각하기에 유럽 문화를 타락시키는 주범은 과학과 기술을 맹신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위해 복무한다는 신념에 가득 차 있는 자유주의적 세계관이었다. 크라우스는 기술의 유용성을 원칙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기술적 진보에 수반되는 파괴적 잠재력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정신적 힘이 성숙하지 못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진보에 대한 맹신이 만연한 세태 속에서 자연적 재앙은 크라우스에게 차라리 하나의 위안이기까지 했다. “자연이 문명에 대해 이처럼 격노하는 것은 문명이 자연을 황폐화시킨 것에 대한 온건한 항의라고 여기게 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크라우스의 문화 비판은 특히 삶의 모든 영역이 상업화되는 현상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는 광고판이 난무하는 세상을 역겨워하면서 이 세계가 자본주의 정신에 오염되었다고 바라본다. 예술과 사업, 사랑과 거래가 뒤범벅되고 모든 가치가 사업이라는 절대적 권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명은 삶의 목적을 그 수단 아래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을 위해 진보가 기능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상에게 진보는 무기를 제공한다.”

그의 작품 제목들(<묵시록>, <인류의 마지막 날들>, <최후의 심판> 등)이 시사하듯 크라우스는 부르주아 문화의 타락이 인류에게 멸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에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자본주의적 정신이 이 미증유의 파국을 초래한 (비)문화가 창궐하는 근원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크라우스는 전쟁을 부추기는 선전이, 전쟁을 영예와 조국, 영웅적 행위로 치장하는 것을 일축하고 전쟁이 상인들의 전쟁, 판로를 둘러싼 전쟁임을 폭로한다.

“나는 판로를 전쟁터로 전환시키고, 이어서 이 전쟁터를 다시 판로로 만드는 일이 때로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 더러운 전쟁의 ‘발주자’들은 배후에 앉아 피에 물든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언론인, 사업가, 투기꾼, 암거래상, 전쟁으로 치부한 자, 비밀정보원 등이 이들이다. 크라우스의 희곡에서 이들은 전쟁을 환영하며 그것이 종결됨으로써 입게 될 사업상 손해를 두려워한다. 평화론을 비웃는 전쟁모리배의 입을 통해 크라우스는 이들의 소름끼치는 냉소주의를 폭로한다. “옳은 말씀이외다. 나는 전쟁은 전쟁이라는 관점 위에 서 있소. 젊은이들이 차를 몰다 목이 부러지든, 아니면 바로 조국을 위해 그렇게 되든 마찬가지 아니오. 나는 그런 류의 감상주의는 사양이오.”

주정립/호남대 연구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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