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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토론과 논쟁 등록 2004.04.05(월) 19:40

자유의지 부정한 예정설의 루터 예리하게 반박한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1469~1536)가 “알을 낳아 주고, 루터가 그것을 부화시켰다”라는 말처럼 기독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사건의 배후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온건한 인문주의자인 그는 루터에 대해 “예리한 정신”과 “기독교도의 심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교리에 대한 접근을 무조건적으로 지향한다”고 보았다. 그는 루터의 이런 태도가 종교적 급진주의와 교회의 심각한 갈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나는 나의 평온을 원한다”라는 말처럼 종교개혁의 와중에 어느 편에도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의 명성은 너무나 컸고, 세상은 그를 평온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1524년 루터를 반박하는 글의 원고를 인쇄소에 넘긴다.

위대한 에라스무스로서도 루터는 이미 버거운 논쟁 상대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은 이미 거대한 정치적·사회적 운동이 되었고, 거듭되는 논쟁에서 루터는 차례차례 승리를 거둔 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논쟁의 범위를 좁혀 루터의 신학 체계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찔렀다. <자유 의지론>에서 그는 루터가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파의 예정설이 인간을 신의 영원한 포로로 만든다고 말한다. 이러한 루터의 예정설에 따르면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신 앞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갖지 못하고, 따라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신이 부여한 힘을 현세의 이성 속에서 인식하는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이러한 관점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에게 최소한 자유 의지의 환상을 허용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절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신이 공포스럽고 불공정한 존재로 보이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루터는 다음해에 <부자유 의지론>이라는 글에서 인간은 신을 자기 내면에 간직할 때 선하며 악마의 조종을 받을 때 악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 자신의 의지는 공허한 것이고, 영원불변한 신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에라스무스의 ‘자유 의지론’을 반박한다. 하지만 루터로서도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신학상의 맹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당신만이 요점과 핵심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와 한참 동떨어진 교황제, 연옥, 속죄 따위나 그밖에 바보스러운 것이라 해야 할 문제들을 들고 나와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루터는 에라스무스에 대해 “그리스도의 가장 지독한 적”이라고 비난하고 다녔다. 그로서는 에라스무스가 세계사적인 사건이 된 종교전쟁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태는 그렇게 흘러갔다. 에라스무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은 종교전쟁으로 비화되어 오랜 세월 동안 피로 유럽 대륙을 적셨던 것이다.

안효상/서울대 강사,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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