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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4.12(월) 22:08

“비열한 서북, 신사적 기호” 지역을 선악구도로 본 윤치호


1929년 3월12일 당대 최고의 거물, 좌옹 윤치호는 셋째 딸의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 사위는 ‘대일본제국’ 최고 명문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정광현. 어느모로 보나 ‘최고들’ 간의 축복받은 결혼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세인의 눈초리는 따가웠는데, 바로 지역색 때문이었다. 윤치호는 내로라하는 기호집안 해평 윤씨였고 사위는 평양, 즉 서북 출신이었다. 윤치호는 “조롱과 비난, 심지어는 욕을 먹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윤치호는 지역감정 하나로만 봐도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안창호는 ‘일본인들은 최근의 적이지만 기호파는 500년간의 적이기에 먼저 기호파를 박멸하고 독립해야 한다’고 했으며 여운형 등은 서북파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기호파 비밀결사를 자신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윤치호는 서북파가 오랜 세월의 억압 속에서 기독교와 근대교육을 받아들여 지도자들로 부상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서북인들은 일본인들보다 기호인들을 더 증오하기에 일본인들에 아첨해 기호파에 대한 비열한 계략을 동원’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기호인들의 결사는 응집력이 없기에 불가능할 것’이니 ‘허심탄회하게 교류하고 신사적으로 대하자’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비열한’ 서북과 ‘신사적’ 기호라는 구도는 이미 지역을 선악이라는 가치체계로 포획해버리는 은폐된 지역색일 수 있었다. 비열한 서북이라는 타자는 기호파의 신사적 주체성에 영원히 종속될 열등성으로 배치된 것이며 야만 대 문명이라는 식민주의 문법의 레토릭이었다. 자신이 지역감정으로부터 벗어난 신사가 되기 위해 타자를 비열한 지역감정으로 함몰시키는 셈이었다. 게다가 ‘일본인’을 끌어들임으로써 지역대결 구도를 민족적 감정 차원으로 연결시키고자 했다. 실제 그는 2차대전을 황인종 대 백인종의 인종전쟁이라 규정한 일제의 구도를 받아들이고 친일 경쟁에 빠져들었다.

윤치호는 “내 평양사위가 성공을 입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서북파의 거두인 이광수와 허심탄회한 교분을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논쟁은 지역감정의 밖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휘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역감정을 개탄했지만 스스로 그것을 강화하는 자가당착을 실천했는바 그것도 식민주의의 강화를 동반한 것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힘이 곧 정의라는 사회진화론적, 제국주의적 인식을 가진 철저한 실력양성론자였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말라’는 좌우명을 충실히 신봉했기에 3·1운동조차 비판의 대상이었고 독립운동은 무용한 수준을 넘어 유해한 것이었다. ‘열등한 민족’의 지역색을 극복할 전망이 부재한 그에게 지역색은 물론이요 민족색마저 사라진 ‘대동아’는 성전을 치르고라도 구현해야 할 유토피아였다. 평양 사위의 성공을 좌절시킨 것은 바로 서울 장인이었고 성공한 것은 식민주의였다.

황병주/한양대 강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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