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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토론과 논쟁 등록 2004.03.15(월) 20:22

서구에 대한 열등감 식민모국과 동일시로 극복하려했던 이광수

“새로 지은 양복에 새로 산 구두를 신고 나서니 저도 제법 양식 신사가 된 양하여, 마음이 흐뭇하더이다…. 그러나 노상에서 眞字(진자) 양인을 만나매, 나는 지금껏 가지었던 프라이드가 어느덧 스러지고 등골에 찬 땀이 흘러 不知不覺(부지불각)에 푹 고개를 숙이었나이다.” 1915년 이광수는 중국 상해에서 ‘진짜 양인’을 만난 열패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광수의 천재의식은 유명한 사실이다. “호텔 體鏡(체경)에 비치인 내 얼굴의 아름다움에 잠시 황홀”할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간직하고 “누구에게든지 내 재능을 자랑하고 싶고, 남이 나를 칭찬해주지 않으면 불쾌”한 천재이자 “세상이 네게 무슨 권위냐. 세상을 다스릴 자가 네가 아니냐”고 자신만만했던 이광수에게 “별 짓”을 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다름아닌 진짜 양인이었다. 그 열등감은 “조선 민족으로는 생존의 능력이 없고, 능력이 없으니까 권리도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졌고 “세 놈도 한 데 뭉칠 수 없는 현재의 조선 민족은 생존할 능력도 권리도 없는 무리”라는 자조로 연결되었다. 그렇기에 이광수에게 ‘민족개조’는 당연한 과제이자 목표로 제시된다.

그러나 1944년 이광수는 “아시아 십억은 영미의 식민지 토인이라는 운명 아래서 신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십억은 점점 선조의 문화도 정신도 잃고 미·영인의 변소를 소제하고, 찌꺼기를 얻어먹지 않으면 안됩니다”라는 격렬한 반서구 의식을 보여준다. “양인의 머리터럭에서는 기름이 도는데 내 것은 이렇게 거칠거칠해”라고 할 정도로 정신적, 신체적 컴플렉스에 시달리던 이광수가 ‘귀축영미’ 타도를 외치게 된 이 놀라운 변신은 근대와 식민을 동시적으로 경험한 한국사에서 별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인식론적 단절을 보여주는 예이다. 예컨대 한국적 토속의 대표적 소설가였던 이효석은 “바다 빛 눈과 낙엽 빛 머리카락이 단색의 검은 그것보다는 한층 자연율에 합치되는 것이며, 따라서 월등히 아름다운 사실”이라는 서구를 향한 시선 속에서 토산품의 세계로 향토를 발견했다.

이러한 컴플렉스와 이율배반에 식민의 경험이 강렬한 상흔으로 남아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 식민모국은 부정의 대상이자 새로운 희망과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해외에 있어 격렬한 사상을 고취하던 자가 동경에 와서 2, 3년 간 교육을 받노라면 飜然 引舊夢(번연 인구몽)을 버”리게 된다는 이광수의 언명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존재했던 일본제국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낸다. 근대성의 놀라운 힘은 식민모국을 통해 경험되었던 것이며 그 식민모국과의 자기동일시는 서구라는 어찌할 수 없는 컴플렉스를 초극하는 길이기도 했다. 요컨대 이광수는 컴플렉스 덩어리로서의 자기자신(개인, 민족)과의 논쟁을 통해 근대와 식민의 오디세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 논쟁이 현재진행형임은 분명하다.

황병주/한양대 강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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