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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토론과 논쟁 등록 2004.02.23(월) 19:54

근대문명 비판자 루소 돌아갈 자연 제시못해

루소(1712~1778)의 전 생애는 논쟁, 불화, 도피의 연속이었다. 루소에게 홉스나 로크의 사회계약은 “맹수의 계약”이거나 “부유한 자의 기만”에 불과했고, 맨더빌이나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사회적 타락으로 간주됐다. 그는 노동분업, 사유재산, 매뉴팩처에서 사회적 진보가 아니라 인류의 재앙을 보았고, 개인 간의 재능의 차이조차 불평등과 타락의 원인으로 파악했다. 튀르고, 케네, 스미스 등과 동시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제학을 시민사회에 관한 서술적 학으로서 접근하는 대신 경제학의 서술 대상인 이기적인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도덕적으로 단죄했을 뿐이다. 볼테르나 달랭바르와의 절교 역시 동일한 배경 속에서 이해된다.

루소는 17~18세기 정치사상에서 명백한 이단자이자 근대적 문명 일반에 대한 비판자였다. 그의 대안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로 요약된다. 문화를 부정적인 것으로 놓고 긍정적인 것으로서 자연을 대비시키는 이분법은-<사회계약론>을 제외할 때-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뼈대를 이룬다. 그런데, 과연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라는 말인가 이 질문은 근대적 재앙의 예언자 루소의 궁지, 그의 정치철학의 난점을 보여준다.

그의 시대 프랑스에서 자연발생적인 공동체는 더 이상 사회경제적으로 존속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별로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난점은 루소의 자연관 그 자체에 놓여 있다. 그는 중세적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목적론적 자연관으로 회귀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뉴튼 이래로의 역학적 자연관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루소에게 자연은 인간적 목적에 봉사하는 가공물 일반에 대립되는 신적, 시원적 심급이었고, 이해관계를 벗어난 모든 긍정적인 정념의 직접적 원천으로서 “자연적 종교”의 대상이었다. 중요한 점은 문명 비판의 근본 심급이 문명의 외부라는 규정 이외에는 지극히 무규정적인 자연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념에 설정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루소의 정치사상은 근대 비판의 심급을 그 사회형식의 외부에 두는 무비판적이지만 급진적인 모든 시도의 출발점에 위치한다.

루소는 당대 사회를 자연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점 만은 알고 있었다. “인간은 평등하고 순결한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스스로 입법한 법률에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이며, “일반의지에의 복종을 거부하는 자에게 복종을 강제하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자유를 강제하는 것”이라고 단언함으로써 칸트로 이어지는 18세기 공화주의의 기초를 수립한다. 그런데 칸트의 “만인의 통합된 의지”가 일반화 가능성이라는 이성적 절차에 근거하는 것과는 달리 루소에게서 일반의지는 공동체의 성원들을 묶는 매우 특수한 정념에 기초하여 형성된다. 이 점은 후대의 사람들이 그를 반이성주의자, 애국주의자, 전체주의자로 비판하게 만든다.

금민/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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