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

기사섹션 : 토론과 논쟁 등록 2004.02.02(월) 19:41

포퓰리스트적 선동 비판 이성의 잣대 옹호한 헤겔

헤겔은 흔히 프로이센이라는 절대주의 국가를 옹호한 국가철학자이자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한 민족적 편견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헤겔이 이른바 국가철학자로서 활동하던 당시의 복잡한 사회·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일면적인 평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독일 학생연맹(부르쉔샤프트)과 그 정신적 지주였던 프리스 교수에 대한 헤겔의 비판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의 과격한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독일 학생연맹은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유와 평등을 구호로 내걸었지만 낭만적 애국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프랑스인과 유대인, 가톨릭 교도, 귀족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학생연맹원들은 자신들의 대의가 정당하다고 확신했으며 그것이 법질서와 충돌할 경우 이를 무시해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이러한 신념은 결국 ‘비독일적’이라고 낙인찍혀 증오의 대상이었던 시인 코쩨부에를 잔트라는 학생이 살해하는 사건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헤겔은 당시 프로이센 국가의 법질서 편에 서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현존하는 국가질서에 대한 단순한 옹호를 넘어서는 좀 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헤겔이 의도한 것은 비판적 이성의 잣대와 보편타당한 법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였다. 이러한 법은 포퓰리스트적 선동을 일삼는 “소위 인민의 거짓 형제와 친구들”을 걸러낼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것이었다. 헤겔은 자신들의 인종적이고 비합리적인 신념을 국가의 법질서 위에 올려놓는 학생연맹의 사이비 민주주의야말로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을 부추기는 프리스 교수를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 서문에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헤겔에게 국가는 “이성과 분별력이 수천 년에 걸쳐 이룩한” 건축물로서 “내부적으로 풍부한 구성을 갖는 인륜적인 것”이다. 프리스 등은 천박하게도 이 중대한 학문적 고찰의 대상을 “사유와 개념의 발전이 아니라 직접적 인식과 우연적 상상의 토대 위에 세우려” 하며 “가슴과 우애, 열광”이 감상적으로 뒤범벅된 “죽”으로 만들려 한다. 이리하여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서 법은 증오의 대상이 되며 주관적 확신과 자의가 올바름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인용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재능인 이성과 학문을 경멸해 보라. 그러면 그대는 악마에게 굴복한 것이 되며 결국 파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는 헤겔의 ‘깊은 뜻’이 근거가 있음을 입증했다. 학생연맹의 비합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은 나치의 (반)정신적 토양이 되었으며 프리스는 나치들에 의해 애국자의 전형으로 떠받들어졌다. 오늘날까지 학생연맹은 독일 극우세력의 온상으로서 ‘순수한’ 게르만족의 영화를 꿈꾸고 있다.

주정립/호남대 연구교수·정치학

http://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4/02/001065000200402021941265.html



The Hankyoreh Plus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