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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2.16(월) 21:59

좌파와 대립 일관한 ‘숭미 대통령병’ 이승만


1948년 5월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은 국회, 정부 수립에 대해 감사할 대상을 열거했다.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미국, 셋째가 국민이었다. 평생을 ‘한국의 조지 워싱턴’을 꿈꿔왔던 그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에 터져나온 감사의 변은 의례적인 것일 수 없었다.

이승만에게 기독교는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현실적 실력집단이었고 “지정지미한 정치법도와 인애자비한 도덕교화의 근본이 되는” 기독교라는 인식에 근거해 근대 서구의 문명부강의 근원이 기독교에 있다고 파악했다. 문명부강의 서구 근대를 상징하는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그에게 ‘인간의 극락국’이었으며 “남의 권리를 빼앗지도 않을 뿐더러 남의 권리를 보호하여 주기를 의리로 아는” 나라였다. 그 근거는 미국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나라이자 크고 광대한 나라이기에 구태여 남의 것을 빼앗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미국의 고문 정치를 상정한 국제연맹의 ‘위임통치’(mandate)를 청원하는 그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의열투쟁이나 의병전쟁은 부질없는 짓이었고 “불평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혈기지용을 억누르고… 내로는 교육과 교화에 힘쓰고 외로는 서양인에게 우리의 뜻을 널리 알려 동정을 얻는” 것이 할 일의 전부였다. “혁명을 책동할 꿈을 꾼 일조차 없다”는 언명은 복화술의 대가인 그에게 매우 보기 드문 솔직담백한 고백이었다. 그의 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미국은 그에게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이자 대통령의 꿈을 실현시켜줄 꿈의 나라였다. 위임통치로 집약되는 그의 외교론에 대해서는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신채호는 장건상, 김원봉, 이극로 등 54명 연서의 성토문을 발표해 “조선이 미국 식민지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식의 요구라고 단언하였다. 요컨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마저 팔아 먹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가는 곳마다 갈등과 풍파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박용만, 안창호, 김구, 미 군정, 한민당과의 갈등 등 그는 동지를 적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갈등 구도는 변하였지만 평생 일관된 것은 좌파와의 대립이었다. “공산당은 마누라도 네것 내것 없이 같이 살자는 것이다”라는 천박한 주장을 펼칠 정도로 그의 논쟁은 유치하고 다급했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이승만은 기독교와 미국을 통해 근대를 경험했지만 ‘부르봉’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수 없다’는 정언명령을 평생 실천했다. 그의 대통령 꿈과 병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 권력의 몽상과 질병은 ‘우리의 근대’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됐고, 거의 대부분의 갈등에서 승리한 그는 우리 모두를 패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병주/한양대 강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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