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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2.15(월) 21:01

고교평준화 비판과 재비판


△ 지난 13~14일 범국민교육연대 주최로 열린 ‘평준화 학술대회’모습. ‘서열화를 위한 선택과 경쟁을 넘어 공공성과 사회적 생산성으로의 전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번 행사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범국민연대 학술대회
반대·보완론 허구성 분석

최근 ‘고교평준화’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학 입학전형이 진행중인데다, 지방 비평준화 지역의 평준화를 둘러싼 의견대립도 논쟁의 재연에 한몫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개방 저지와 공교육 개편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는 지난 13~14일 서울 숭실대에서 ‘평준화 학술대회’를 열었다. 범국민교육연대에는 전교조, 전국대학노조,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문화연대, 국공립대교수협의회, 문화연대, 학벌없는사회 등 19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기본적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평준화의 의의를 확인하고 운동론적 과제를 모색하는 성격을 띠었지만, 평준화 옹호뿐 아니라 보완, 혹은 반대 논리를 고루 살펴보고 교육철학과 계급의식의 차이를 드러내보였다.

손지희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실장은 ‘평준화 논의의 지형과 계급적 성격’이란 발제에서, 교육 평준화는 기회균등과 협동, 인간의 성장·계발 가능성에 대한 신념 등을 바탕으로 도입된 정책임에도, 기득권 세력의 지속적인 반발과 치열한 대입경쟁 때문에 사실상 점진적 해체의 과정을 밟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준화 해체담론은 학교 차별화를 통한 계층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교육담론과 적극 결합하면서 더욱 확대되고 정교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책연구기관과 학계 일부가 평준화 해체의 논거를 생산하면 정·재계와 보수언론이 재가공해 확산하고, 사학재단과 보수단체들이 이에 화답해 목소리를 높이면 보수언론이 다시 이를 받아 교육당국을 공격하고 정책주문을 내놓는 식이라는 것이다.

평준화 반대 논리는 대체로 △교육 수월성(秀越性·교육효과) 저해 △사학의 자율성 위축 △학교 선택권 제약 △학교교육의 획일화와 질 저하 △과외수요 팽창 △교육 형평성 훼손 등으로 정리된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평준화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며, 학교제도의 다양화와 학교선택권의 확대, 단위 학교의 자율성과 책임성 증대, 지방행정자치와 교육자치의 연계 강화 등을 예시했다.

반면 손 실장은 평준화 반대주장에는 △공교육 내 계급별 교육트랙 개설로 안정적 지위세습 △학벌카스트 확장 △경쟁이데올로기 내면화 △자본이 원하는 노동력 공급체제 구축 △공교육 재정부담 축소 및 사학의 재산권 강화 등의 ‘숨은 의도’가 있다고 반론했다.

심성보 부산교육대 교수는 ‘평준화 해제·보완논리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특목고·자립형 사립학교·자율학교 등 대학서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평준화 보완제도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그는 “내신비율을 낮추고 수능비율을 높인다는 서울대 방침과 특목고의 파행적인 운영행태가 학교교육의 파행을 부추기고 사교육을 확산시키며 평준화의 기형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고교 평준화정책 학력 하향화 쟁점 분석’에서, 1997년 현재 평준화를 도입한 전국 8개 중소도시와 비평준화 지역 11개 중소도시의 고등학교 1학년 재학생들의 모의 수능시험 점수와, 이들이 3학년이 된 1999년 현재 점수를 비교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처음에는 각각 236.415점과 236.472점으로 학업성취도가 거의 같았으나, 2년 후에는 평준화 지역(274.396점)이 비평준화 지역(273.315점)보다 오히려 1점 가량 점수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성 교수는 “연구결과를 볼 때 평준화정책으로 학생 성적이 하향평준화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고교 평준화정책은 공교육을 바라보는 교육적 관점의 문제이자 철학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진상 경상대 교수는 “대학서열 구조가 중등교육 황폐화, 대학교육 경쟁력 약화 등 한국교육의 총체적 모순을 낳고, 학벌주의 등 사회적 모순을 확대하는 주범”이라고 비판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했다.

우선, 학부제도에서는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학들을 통합네트워크로 구성 △서울대는 학부생을 모집하지 않는 대신 학부를 통합국립대 학생들에게 개방 △지역 국립대학들은 현재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학구별로 통합 △법학부·사범학부·의학부 등 전문직 학부과정 폐지 등이 그것이다. 또, 대학원을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구분해, 서울대를 최고 수준의 일반대학원으로 육성하고 전문대학원은 원칙적으로 지방으로 분산하는 방안 등을 내놨다.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대표는 14일 폐회 발언에서 “평준화운동은 단순한 교육운동이 아니라 교육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돼버린 현실을 극복하고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투쟁”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근대 공교육의 이념은 사회구성원들에게 동등한 자기실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였고 학부모와 피교육자들은 교육을 통한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준화운동의 구체적 전략으로 △평준화의 사회적 의의 공감 △‘평준화 폐지’ 주장에 대한 수세적 방어에서 ‘적극적 평준화’를 촉구하는 공세적 태도로 전환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타파 운동 병행 등을 제시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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