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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3.16(일)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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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의 첫 작품


“짐이 국가다.” 이것은 17세기 프랑스의 전제군주 루이 14세(재위 1644~1715)의 유명한 말이다. 어린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을 쿠데타로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한 패역의 군주 세조(재위 1455~1468)도 “내 말이 곧 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감히 “내 말이 곧 법”이라고 큰 소리친 왕은 우리 역사상 지극히 예외적이었다.

조선시대 이 나라의 왕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성인의 가르침에 관한 학자·문신의 강론을 들어야 했다. `경연’(經筵)이라고 불리는 이 자리에서는 임금도 학문과 국가경영에 관해 질문하고 토론했다.

그래서 왕조의 정치는 유교적 규범을 벗어나지 않고, 권력의 횡포를 자제하고 견제할 수 있었다.

승지였던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1527~1572)은 선조 1년(1568) 섣달 초엿새 저녁 경연에서 퇴계 이황의 중용을 청하면서 말했다. “임금은 먼저 몸가짐을 가다듬고, 어진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선조임금이 말했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다만 근래에 보류했던 것은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어찌 이런 일들을 다 알 수 있겠는가. 이렇게 깨우쳐주니 참으로 옳은 일이다.”

만백성 위에 군림하는 임금도 학자·문신의 강론을 들을 때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이 우리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군사독재 32년 동안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완전히 박탈당했었다. 양김시대 10년의 민주화과정을 거쳐 우리는 대통령과 평검사들이 공개적으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요, 전국민을 흥분케 만든 `이벤트’였다. 그동안 `토론’을 체험하지 못했던 우리로서는 흥분과 함께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봐야 했다.

상대가 대통령이든 검사든, 또는 오갈 데없는 노숙자든,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겸허함을 전제로 해야만 토론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날 일부 검사의 거침없는 발언은 겸허하지도, 품위를 지키지도 못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은 마치 피의자를 다그치고, 법정에서 공소장을 읽는 듯한 오만함을 보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게 이날의 공개토론은 사실상 `검찰물갈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정책선언의 자리였다. 노 대통령은 검찰 지휘부를 `청산돼야 할 사람들’로 직설적으로 지목함으로써 이틀 뒤에 있을 `서열파괴 인사’를 예고했다.

이번 서열파괴 인사는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개혁’의 첫 작품이다. 노 대통령이 평검사들의 비판적 저항을 극복해야 할 입장에 섰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정한 기준에 의해 일정한 절차를 밟아 퇴출시킨 것도 아닌데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유죄의 낙인을 찍어야만 했을까 좀더 완곡하게 말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들이 “공개적으로 낙인찍혔다”는 굴욕감없이 조용히 물러나게 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공개적 토론은 국민을 흥분시킬만한 참신한 시도였다. 아마도 이 나라의 헌정사에 길이 기억될만한 에피소드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변형된 기자회견’으로 끝났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고 하지만, 피할 수도 있었을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사표를 내고 떠나는 검찰간부들의 비판이 그것이다.

우리는 국민이 선택한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첫 작품이 삐거덕대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큰 방향이 옳게 가고 있다면 결국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깃발이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말 힘이 있는 정부는 힘을 자랑하지 않는다. 겉으로 부드럽지만, 속으로 강한 `외유내강’을 미덕으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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