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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9.29(일)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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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강북 재개발/ 정경희


뉴욕의 맨해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마천루의 집합체다. 마천루들은 무작정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명동성당과 같은 고딕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감탄하는 파리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나선 여자처럼 화사한 바로크양식의 건물 일색이다. 유명한 샹제리제 거리도 대충 70여년 묵은 바로크양식 일색이다. 프랑스는 이 바로크양식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집요하다고 할 만큼 엄격하게 감시·규제하고 있다. 비록 규모는 파리만 못하고 화려해 보이지도 않지만, 마드리드는 보다 고풍스런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해서 역사의 발자욱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리는 서울을 `6백년 고도’라고 자부하고 있다. 서울은 6·25전쟁 이후 판자촌의 거대한 집합체였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은 불도저로 구시가를 밀어붙이고 콘크리트의 도시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콘크리트의 집합체를 박정희 정권의 자랑스런 업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콘크리트의 집합체는 고딕도 바로크도 아닌 `판잣집양식’의 거대빌딩들의 무질서하게 치솟아 있는 괴물이다. 졸부의 나라 한국은 허겁지겁 콘크리트 고층빌딩과 아파트를 눈깜짝 하는 사이에 쌓아 올렸지만, 사실은 판잣집을 콘크리트로 지었을 뿐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열대의 밀림을 깎아 뚝딱뚝딱 건설된 식민도시처럼 역사의 자긍심은 불도저에 짓밟혀 깡그리 사라졌고, 품위있는 사람들끼리 꾸려나가던 이웃공동체는 산산조각났다.

6백년 고도는 홍수처럼 밀리는 승용차가 길을 메우고, 투기바람과 매연이 사람을 질식시키는 약육강식의 도시요, 졸부의 도시가 됐다. 그래서 청계천 복원 논의는 우리에게 신선한 꿈과 기대를 갖게 한다. 이제 와서 `전원도시 서울’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옛날 자연이 숨쉬던 서울로 되돌아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슴 설레는 것이다. 또한 청계천 복원이 6백년 고도의 역사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감동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원된 청계천에 흘러야 할 맑은 물의 공급은 가능한지, 고가차도를 헐어버린 뒤 자동차 홍수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청계천 주변의 도시설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서울의 주인인 시민은 아직도 해답없는 의문이 너무 많다. 아마 시장이나 관련 공무원이나 연구원들의 머리속에는 복원의 청사진이 완성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울의 주인인 시민이 충분히 알고 납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청계천 복원은 시장이 자기 돈으로 자기 별장을 수리하는 것과는 다르다. 시민이 내는 혈세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진행해야 할 대규모 공사다. 서울시는 여러차례 공청회와 토론을 거쳐 구체적인 복원계획을 짜고, 필요한 예산의 내용과 규모까지 합해서 상당한 분량의 `백서’로 꾸며 시민 앞에 내놓고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청계천 복원이 이런 기본적 과정도 거치지 않고 서둘러야 할 만큼 급한 사업은 아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거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 착수해도 늦지 않다. 뿐만 아니라 청계천 복원은 6백년 고도 서울의 복원·재설계라는 큰 그림의 일부분이다. 큰 그림의 윤곽을 그린 다음에 청계천 복원 계획도 확정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큰 그림’은 `강북 재개발특별법’이 제기되면서 더욱 현실적인 과제가 됐다. 강북재개발은 6백년 고도의 핵심인 강북을 `제2의 강남’으로 만들 위험성이 크다. 천박한 정치꾼들과 장삿속에 밝은 건설업자, 그리고 부동산 졸부들이 삼위일체가 돼서 강북에 또 하나의 건설붐을 일으키고, 또 하나의 거대한 콘크리트 괴물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와 예술과 쾌적한 환경과 품위있는 인간성 회복의 꿈이 좌절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정경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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