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 2002.05.05(일) 19:54
기사검색
.

  여론칼럼

여론칼럼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 국제 | 증권 | 문화생활 | 정보통신 | 만화만평

HOME

.

하니와 함께

오늘의 이메일
뉴스 브리핑
하니 잘하시오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투고

토론

토론기상도
오늘의논객
주제별토론
자유토론방
라이브폴

전체기사
주요기사
지난기사
기획연재

광고안내
사이트맵
신문구독

. home > 여론칼럼 > 정경희 죽비소리

카드가 사람잡는 세상/ 정경희


“사치의 해악은 천재(자연재해)보다도 더하다”는 것은 율곡 이이(1536~1580년)의 말이었다. 그래서 수입을 헤아려 그 한도 안에서 쓴다는 말을 `양입위출'이라고 해왔다. 우리의 오랜 규범이요 전통이었다. 다시 말해서 근검절약의 전통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이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번영하는 선진산업국가들의 원칙이기도 하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의 일이었다. 세 차례의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일본만은 승승장구해서 막대한 흑자를 올리는 데 세계가 놀랐다.

서방세계에서는 이때 일본의 기적의 원인을 캐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 현상의 하나로 일본의 신용카드 보급률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신용카드와는 거꾸로 일본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프리패스 카드'를 발명해서 쓰기 시작했다고 화제를 삼았다. 신용카드가 `후불=외상카드'인 것과 달리, 일본 사람들은 선불카드를 발명한 것이다. 공중전화카드가 그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이 나라는 국민소득이 1만달러선도 회복하지 못한 판에 신용카드가 범람해서 전국에 빚쟁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외상이 소를 잡는다'더니 이제는 `신용카드가 사람 잡는' 세상이 됐다.

수입의 한도 안에서 쓰는 `양입위출'의 전통은 어디로 갔는지, 카드빚 때문에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힌 사람이 110만명이라고 했다.

허리띠를 졸라맬망정 빚은 지지 않겠다는 인간적 자긍심과 도덕적 긴장은 무너지고, “쓰고 보자”는 퇴폐적인 건달의식이 거리에 넘친 상태다.

우리는 국가적 부도사태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만인이 정신적 파산 상태에서 방황하고 있다. 온 국민이 양주에 취해서 휘청거리는 술꾼이 된 것도 그런 예의 하나다.

술취한 파출소장이 음주운전 끝에 행인을 치어 죽게 하고 달아나는가 하면, 한 대학의 신입생 중 5%가 알콜중독자라는 어처구니 없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을 방문한 영국의 한 위스키회사 경영자는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폭탄주 덕분에 장사를 잘 했다”고 털어놨다. 여섯 달 동안(2000년 9월~2001년 2월) 2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위스키를 국민 한 사람 앞에 한 병 꼴로 마셨다는 통계도 있었다. 국가 전체가 `술독'이 아닌 `양주독'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과거 이 나라에서는 술에 대해 엄격했던 전통을 생각할 때, 위스키 독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한심한가 더욱 실감하게 된다.

폭군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1623년)의 공신들이 모일 때면 술상에 술병은 겨우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신들이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해서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동평위 공사문견록>).

과거 `향음주례'나 궁중연례의 격식은 모두 술을 더디 마시게 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돼 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과거 정치군인들이 부귀를 누릴 때 발명했던 폭탄주를 사내 대장부의 신분증으로 믿는 한국적 신흥종교의 신도가 됐다.

이 나라는 또 거대한 노름판이 됐다. 경마장과 경륜장, 카지노에 하루 800억원의 돈이 몰리고, 복권까지 합치면 한해 시장규모 10조원대의 노름판이 됐다고 한다.

땀 흘리지 않고 대박을 거머 쥐겠다는 노름판의 밑바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패가망신해서 절망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자긍심과 품위와 양심을 저버린 천박한 기득권 집단의 그늘 밑에서 살고 있다. 그 결과 만인이 술과 노름과 빚더미 속에서 놀고 있다. 카드빚 때문에 다섯 여자를 죽이는 끔찍스런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정신적 파산 상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땀 흘리고 근검절약하는 세상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모두가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

정경희/ 언론인












↑ 맨위로

.  

여론칼럼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 국제 | 증권 | 문화생활 | 정보통신 | 만화만평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