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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의 과거청산


한국사람들은 `과거청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일제가 패망했을 때 `친일단죄'를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만들었고, 박정희가 돌연사했을 때 5·16군사독재청산을 기대했다. 또 전두환 정권이 몰락하고 노태우 정권을 거쳐 자칭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을 때 5공청산을 기대했다.

그러나 반세기 정치사에서 `과거청산'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친일단죄를 위한 반민특위는 이승만에 의해 강제 해체됐고, 5·16 군사독재는 5공 정권으로 계승됐다. 또 김영삼 정부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서야 `반란수괴 전두환과 종범 노태우'를 단죄했다.

하지만 군사독재 32년 동안 부귀영화를 누렸던 `해바라기군단'은 3당합당을 통해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또 반만년 역사상 초유의 재앙인 국가부도 위기를 불러들인 집단이 국회에서 과반선에 육박하는 다수당으로서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반세기 정치사상 최초의 정치드라마를 목격하고 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이 그것이다.

지역감정의 벽을 뛰어넘어 `피케이' 출신의 노무현 경선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광주의 선택, 그에 이은 `노무현 돌풍'은 정당민주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가 뒤미쳐 당권과 대통령 후보의 분리 요구에 동의한 것도 민주당의 이변이 강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도 또 하나의 `과거청산문제'에 맞딱뜨리게 됐다. 한나라당에서 목에 힘주고 정치인 행세를 하고 있는 군사독재 하수인들이 감히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것이다.

군사독재 32년을 기반으로 하는 37년 집권 집단의 유산상속자인 한나라당에 군사독재의 졸개 노릇을 했던 `과거'는 오히려 자랑스런 `훈장'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정치적 기반은 박정희의 유산인 `경상도 지역감정'이다.

이 지역감정은 4·19 이후 팽배했던 민주화의 여망과, 문민지배의 역사적 전통을 짓밟고 등장했던 5·16 쿠데타 집단의 생존전략이었다. 소수가 다수 국민을 지배하고 살아남기 위해 몰염치하게 써먹은 `파벌정치'의 산물이다.

이렇게 시작됐던 `지역감정의 정치'는 정권교체가 실현된 지금까지도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경북의 `티케이' 인맥을 부산·경남의 `피케이' 인맥으로 갈아치웠다.

또 김대중 정부는 경상도 인맥을 전라도 인맥으로 갈아치웠다. 서유럽이나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지방분권의 역사와 일치하는 것처럼, 경상도 인맥에 의한 배타적 권력독점을 타파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될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역감정의 정치가 한층 높은 국민적 통합의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미구에 또 다른 갈등의 폭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과거청산의 실패로 이어져온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민주화운동 반세기사상 두 축이었던 양 김씨 계열 정치집단이 오랜 갈등·대립을 접고 통합해야 될 때가 왔다고 믿는다. 비록 양김씨는 물과 기름의 관계라 해도, 그 영향 아래서 활동·성장해온 정치인들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악수하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는 이미 4년 전 정권교체 초기에 양 김씨 계열 정치집단의 악수를 촉구한 바 있다. 지금도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왕조 문치의 정정기였던 영조(1725~1776), 정조(1777~1800) 시대는 `탕평 정치' 시대였다고들 말한다. 17세기 붕당정치를 `불편부당의 정치'로 바꿔 놓은 시대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정치집단도 힘을 합쳐 군사독재의 졸개였던 사람들이 활개치는 역사의 퇴행은 막아야 할 것이다.

정경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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