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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7.01(금) 18:40

‘전쟁’ 권하는 사회


브레히트는 꿈에 먼저 죽은 동료가 나타나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괴로워하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시로 썼는데, 우리 사회는 살아남은 자의 기고만장한 환희만이 넘실대는, 현진건의 표현을 빌리면 ‘전쟁 권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는가!

‘경쟁력 제고’라는 말 앞에서는 모든 이성적인 판단이나 설명, 인간적인 배려가 다 멈추는, 이 답답하고 살벌한 현실도 바로 전쟁이라는 말의 일상화, 관행화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얼마 전 “평화, 또 하나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었다. 나는 강연회 내내 ‘전쟁’과 ‘평화’라는, 결코 동거할 수 없는 말의 강연 제목에 불편했다. 문득 전쟁이라는 말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비행장에서는 ‘새와의 전쟁’, 여객선은 ‘안개와의 전쟁’을 벌인다고, 일본과 ‘역사 전쟁’을 벌인다고 언론은 전한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두고서는 ‘문화 전쟁’, 한전은 전봇대에 집을 짓는 ‘까치와의 전쟁’, 학생들은 ‘입시 전쟁’, 겨울에는 ‘한파와의 전쟁’, 여름에는 ‘냉해와의 전쟁’을 벌인다고 언론은 쓴다. 또 무슨 전쟁, 무슨 무슨 전쟁. 총 안 들고서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얼마나 많나! 어제 텔레비전은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겠다 말했다고 전한다. 그 말을 널리 확산시키는 데 앞장선 것이 언론의 선정주의, 상업주의겠지만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 쓰는 우리의 둔감함도 한몫 했을 것이다.

실제 전쟁말고 ‘OO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내가 의식하면서 듣고 쓰게 된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80년 할리우드 배우 출신 미국 대통령 레이건 등장 이후다. 그때 들은 것이 ‘마약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이었던 것 같다.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저 무시무시한 말을 저래 막 갖다 붙여 써도 되나?’ 의문이 들었지만 얼마 안 있어 그냥 익숙해져 버렸다. 언제나 전쟁 앞에는 우리 사회에서 없애야 할 나쁜 것들이 붙어 있었으니까. ‘폭력과의 전쟁’, ‘빈곤과의 전쟁’, ‘모기와의 전쟁’, ‘암과의 전쟁’ ….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이러한 일들도 다 저들이 노린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너무 음모론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진짜 전쟁을 해서라도 제거해야 할 것들만 내세워 전쟁이라는 말의 쓰임새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린 뒤, 그 다음으로는 아무 데나 갖다 붙여 전쟁을 일상화시키고 공포를 내면화시키는 것. 일반 민중에 대한 지배 방식이 오직 지배자들이 동원하는 강압적 폭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피지배 계급들의 자발적 동의를 동원하는 헤게모니적 방식도 있다고 그람시가 말했다는데, 이 전쟁이라는 말의 일상화를 통한 공포의 일상화, 내면화도 그러한 시도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맹목적 애국심을 부추기는 지배질서 유지와 강화의 가장 효율적 방법이 아닌가!

얼마 전 비무장 지대 안에서 일어났던 총기난사 사고라는 비극적 사건을 다루는 뉴스를 보고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국방장관이 취임 후 ‘군대 내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폭력을 없애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군대 내 폭력과의 전쟁’이라? 그건 전쟁을 벌일 일이 아니라 인권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생활환경을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들고, 고충 처리를 위한 상담을 일상화하고, 군대 내 부적응자를 위한 배려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 결코 ‘전쟁’을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갈수록 거칠고 강한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거칠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 브레히트는 꿈에 먼저 죽은 동료가 나타나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괴로워하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시로 썼는데, 우리 사회는 살아남은 자의 기고만장한 환희만이 넘실대는, 현진건의 표현을 빌리면 ‘전쟁 권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는가!

요즘 우리들은 정말로 전쟁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전쟁은 나만, 내 자식만 다치고 죽지 않으면 강 건너 불구경이 되어 버렸다. 불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라는 말을 예전 어른들로부터 들은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전쟁 구경이 그렇게 되어버린 게 아닐까? 이러는 중에 전쟁은 더욱 잔인해졌다. 이처럼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마당에 경쟁이라는 말과 사태에 대해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예민한 반응은 설령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나 가소롭게 보일 것인가! ‘경쟁력 제고’라는 말 앞에서는 모든 이성적인 판단이나 설명, 인간적인 배려가 다 멈추는, 이 답답하고 살벌한 현실도 바로 전쟁이라는 말의 일상화, 관행화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비교와 경쟁은 인간 이성과 건강한 판단력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늘 성찰하고 반성하는 생활, 무엇보다 언어생활을 사려 깊게 함으로써 혁명보다 더 어려운 우리 일상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영민/경남공업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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