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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2.13(일) 16:47

정리해고 요건 완화는 비정규직 양산할 것


노무현 정부는 정리해고의 핵심적 요건 가운데 하나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지금의 정리해고법 아래서도 정리해고가 남발되고 있는데, 정리해고 요건까지 완화하게 되면 비정규직 양산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이제는 도리어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할 때다.

실업문제로 온 사회가 고통받는 현실에서 정리해고가 무분별하게 자행되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는데,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출신인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이 지난달 30일 “정리해고를 할 때 사용자가 노조와 사전에 협의하도록 하는 현행 근로기준법 조항을 삭제하는 등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이에 노동자의 친구라는 노무현 정부는 한술 더 떠 정리해고의 핵심적 요건 가운데 하나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추진한다고 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직원 채용비리에 대해서 같은 노동조합 간부로서 부끄럽고 반성한다. 하지만 이참에 이것을 빌미로 정리해고 요건이 후퇴하는 것은, 사용자들이 이땅의 정규직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돌림으로써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내가 소속한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의 정리해고 강행 사례를 보면, 지금 있는 정리해고법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흥국생명은 자본금 122억원으로 자산 4조6천억원에 매년 수백억원의 흑자를 내면서도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며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2005년 1월31일자로 경영상 이유에 의해 21명을 정리해고했다.

흥국생명은 외환위기 이후 3400명에 이르던 직원이 명예퇴직, 강제퇴직, 분사 등의 방식을 통해 정리하고, 이제 500명도 채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회사의 순이익은 해마다 상승곡선을 그리며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475억원에 이르는 흑자를 냈다. 그런데도 흥국생명은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 경영여건 악화를 이유로 내세우며 정리해고를 한 것이다.

사용자는 60일 전에 노동조합에 정리해고 계획을 통보했고, 형식적이지만 네 차례에 걸쳐 협의도 했다. 회사가 미래의 경영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은 법원이 정리해고에서 ‘도산 회피설’에서 ‘경영 합리성론’으로 판례가 변했다는 자신감에서 온 것으로, 그런 확신 아래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흥국생명은 지난해 11월29일 사장의 담화문으로 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회사는 인원감축의 규모 통보도 없이 희망퇴직은 노동조합과의 필수 협의 사항이 아니라 회사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강제퇴직을 종용하였다. 대부분 대상자들이 여직원이었으며 조합원이었다. 이 과정에서 무려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17명의 직원들이 강제퇴직을 해야 했다. 대규모 퇴직이 있은 후 임원은 2명이나 늘려서 13명이 되고 콜센터 계약직 직원을 30명 이상 채용하면서도 회사가 판단하는 유휴인력 규모가 21명이라고 주장하며 정리해고를 강행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지금의 정리해고법 아래서도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정리해고를 남발하고 있는데, 노동조합 전 위원장 출신의 국회의원과 노동자의 벗을 자처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리해고 완화 계획을 보면서 ‘아는 놈이 더 무섭다’는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여 ‘도산 회피설’을 회복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김득의/흥국생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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