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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왜냐면 등록 2003.12.14(일) 19:49

고교평준화 폐지, 기득권자들의 몸부림

최근 논쟁거리로 대두된 고교평준화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평준화 폐지 주장이 언론에 발표되자 재계와 보수 언론계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집단적 몰아치기로 지원사격을 퍼부으며 사회적 동조세력 규합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평준화 교육은 영재를 둔재로 만들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거리의 부랑자로 내몰아가는 ‘교육사회주의적 발상’으로서 ‘사이비 종교’라는 극언까지 사용하며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내세우는 논거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하향평준화로 상위권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초래하여 교육의 경쟁력을 상실했다. 둘째, 해마다 사교육비의 증대를 부추겨 시험지옥을 심화시킴으로써 대학입시를 부자가 이기는 게임으로 만들었다. 셋째, 교육수요자들이 받고 싶어 하는 고급교육에 대한 욕구를 차단하여 사회발전의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시장 원리를 도입하여 국가적 인재 양성의 우려를 씻어내야 하고, 비평준화와 평준화고교 및 특목고와 일반계고교의 등급화를 인정하여야 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해 평준화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평준화 폐지의 핵심 논거들은 정책 추진의 기본적인 정당성과 타당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설득적인 것도 아니다. 마치 평준화 정책이 한국교육과 사회발전의 발목을 틀어잡는 선무당인 것처럼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기만하려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평준화 폐지 주장의 본질은 특정한 사회집단의 이익과 논리를 앞세운 집단적 음모와 사회적 불순성에 근거하고 있다. 왜 그러한가

첫째, 지금까지 평준화 정책으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 수준과 고교교육이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되었다는 국내외 교육학자나 연구기관의 실증적 연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평준화 정책의 결과 전반적인 상향 평준화를 가져왔고, 교육기회의 평등으로 100%에 가까운 취학률과 교육의 대중화를 낳았으며,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에게는 시험지옥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었다.

둘째, 사교육비의 폭발적 증대와 시험지옥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구조와 성적 위주로 획일화된 대학입학제도, 견고하게 서열화된 대학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평준화 정책의 탓이 아니다. 설령 평준화를 폐지한다고 해도 교육예산의 절반을 훨씬 넘는 13조원의 사교육비 지출 현상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현행 대학입학제도는 저소득층이나 중산층보다는 부유층에게, 농촌지역보다는 도시지역, 지방의 소도시보다는 대도시지역 학생들에게 명문대 입학이 훨씬 유리한 제도이다. 즉, 머리 좋고 공부는 잘하지만 경제적 소득이 낮은 계층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계층의 학생들에 비해 명문대 진학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 수준이 높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교육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고 투자를 쏟아 붓게 되고, 이는 중산층을 비롯한 대다수 학부모의 불안심리를 적절히 자극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사교육비의 폭발적 증대를 불러오게 되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부모 잘 만나면 용 난다’는 말로 대체되고 말았다.

셋째,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고급교육에 대한 욕구와 학교선택권 확대 요구의 본질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데 있다.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학벌로부터 얻게 되는 각종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차별과 특권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욕구’와 ‘요구’는 순수한 취지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이나 선택권 확대가 결코 아니다. 공교육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돈 많은 자들과 특권적 기득권을 수호 유지하려는 집단이 그들만의 차별화된 입시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독립 선언서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요컨대 평준화 정책은 유지되어야 하고 국민적 정당성과 현실적합성을 띤 보완 장치의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준화 폐지 주장의 본질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 경쟁력 확보나 순수한 의미의 학교선택권 확대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명문대 학벌이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현실에서 그동안 누려왔던 각종 정치사회적 특권과 혜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득권 세력들의 집단적 몸부림이다. 단지 개인과 가족의 신분상승을 뛰어넘어 가장 쉽고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학교교육을 통해 정치사회적으로 그들만의 동족계급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고 강화하려는 집단적 음모와 사회적 불순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논거들은 평준화 폐지의 논거가 아니라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획일화된 대학입학제도, 학벌 획득에 따른 정치사회적 차별과 특권 해소의 논거들로 제시되어야 옳다. 자신들의 본질을 철저히 은폐시킨 채 견강부회식 주장과 논리로 국민여론을 호도하려는 거짓 행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박명섭/전남 구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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