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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왜냐면 등록 2003.01.06(월) 18:11

한자 그럴듯하게 고른 '취음'일뿐

지난 12월24일치 <한겨레> 11면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에 우리말의 말밑(어원)에 관해 쓴 본인의 글을 두고 김영만 선생이 지적한 글을 잘 읽었다. 우선 지나쳐 버리지 않고 관심을 가져 주어서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남한 것을 베껴서 틀린 것도 비슷하지만, ‘강턱, 닐리리, 답답하다, 두째, 망녕, 부실하다, 사또, 사발, 손돌, 쌕쌔기, 영낙없다, 왈짜 …’들이 남한 사전들과는 달리 내 의견과 같아서 끌어다 썼다.

우리 국어사전은, 1920년 조선총독부 <조선어사전>에는 ‘실하다’(실팍하다)와 ‘實하다’가 있는데, 1938년 문세영 <조선어사전>과 1947년 이윤재 <표준조선말사전>에는 ‘실하다’만 있고, 1957년 한글학회 <큰사전>부터는 ‘實하다’만 있듯,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럴바에야 ‘실하다’(실팍하다)만 있어도 될 듯하다.

흙덩이가 부슬부슬하거나, 몸이 비실비실, 비칠비칠하면 한자와 상관없이 ‘부실하다’고 한다. ‘불실’은 ‘결실’의 반대말이다. ‘영낙없다’와 ‘零落’이 다르듯이, ‘부실하다’에는 ‘불실’이 필요없다. 우리말 같으면 ‘불’(火)의 ‘ㄹ’이 ‘부나방, 부넘기, 부드레, 부삽, 부젓가락, 부집게 …’들처럼 줄어서 ‘부’로 되지만, 한자 ‘불’(不)의 ‘ㄹ’은 ‘ㄷ, ㅈ’ 이외의 소리 앞에서는 ‘불신, 불실, 불심 …’들처럼 줄지 않는다.

한글이 없을 때, ‘사당’을 한자로 취음하여 ‘舍堂, 寺黨, 社黨, 沙당 (계집녀변)’처럼 적을 수밖에 없었다. ‘도배’를 적은 ‘塗排’는 <조선종종실록>에, ‘塗褙’는 <조선인조실록>에 보이는데, 순 한문책에 ‘도배’라고 적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밖에 적을 수가 없고, 또 한자를 잘 골라 적었다. ‘기별’을 적은 ‘奇別’은 <동한역어>에 보이고, 본뜻과 달리 쓰이는 ‘記別’은 <송남잡지>에, ‘記 별’(풀초밑 별)은 <법화경>에 보이는데, 같은 뜻이다. ‘寄別’은 우리 국어사전 작품이다. 취음으로는 그럴 듯하게 적었다.

우리말 ‘남’(아래아 남)에는 ‘사람, 사내, 타인’이라는 뜻이 있다. ‘남진겨집’의 ‘남진’은 ‘男人’이고, ‘겨집’은 ‘在家’라고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우리말 ‘패’는 ‘동아리’, ‘무리’라는 뜻으로 ‘패거리, 남사당패, 노름패, 왈패 …’들처럼 ‘사람’에 관해서만 쓰인다. 한자말 ‘牌’는 ‘패찰, 군대 조직, 열 집’ 따위를 일컫는 말인데, 여러 가지 한자말에만 쓰인다. 우리말 ‘패’를 중국에서는 ‘牌’라 하지 않고, ‘파’(派)나, ‘훠’(人+火 果+多)라고 한다. 우리말 ‘패’와 한자말 ‘牌’는 다른 말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http://www.hani.co.kr/section-001062000/2003/01/0010620002003010618113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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