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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7.01(목) 17:33

메아리를 들려달라


한겨레 비평
‘한겨레 비평’지적 후속보도

<한겨레>를 ‘비평’하는 일은 어렵다. <한겨레>가 힘든 여건 속에서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는 내 ‘고려’와,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가장 올바른 신문이라는 내 ‘편애’는 <한겨레>에 대한 내 비판을 종종 주저하게 만든다. 하물며 ‘한겨레 비평’에 대해 ‘비평’해야 하는 지금은 어떠하랴. 그러나 귀할수록 잔소리가 많은 법. 여기 그 잔소리에 하나를 보탠다.

‘한겨레 비평’은 <한겨레>가 어제 한 말들과 내일 할 말들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을 ‘듣는’ 지면이다. 고로 ‘한겨레 비평’은 어제의 넘친 말과 모자란 말을 가리고, 할 말이었으나 하지 못한 말들을 내일의 말로 삼는다. 지난 몇 해 동안 ‘한겨레 비평’은 위와 같은 작업을 수행해왔다. <한겨레>에 대해 평균 이상의 애정을 가진 많은 이들이, <한겨레>가 평균 이상이 아닌, ‘최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글을 실었다. 그 글들 중엔 더러 격려도 있었지만, 대개는 질정이었다. 이는 쓴소리를 듣고자 한 기획의도에 부합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한겨레에 대한 ‘애정의 발로’였을 터이다.

그러나 그 애정의 발로에 대해, 오늘까지 한겨레가 그 어떤 ‘메아리’를 들려주었는지를 묻는다면, 대답은 솔직히 회의적이다. 가까운 예를 보자. 5월14일치 ‘한겨레 비평’은 “공권력의 묵인 아래 ‘용역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는” 경기도 일산 풍동 강제철거 현장에 대한 <한겨레>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 비판은 달포가 넘은 오늘까지 전혀 지면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 이후 한겨레 지면에서 풍동철거민 기사가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던 것이다. 5월15일부터 7월1일까지 8차례의 풍동 관련기사 모두, 부동산 기사 일색이었다. <한겨레>가 ‘일산 택지지구 새 아파트 쏟아진다’(6월7일), ‘고양 풍동 ’아이파크‘ 분양 어떻게 될까’(6월15일), ‘일산 풍동지구 ‘두산위브’ 730가구 외’(7월1일) 등 도시중산층의 내집 마련과 재테크에만 눈을 내맡긴 동안, 약한 우리 이웃들은 세상 밖으로 내쳐지고 있었던 셈이다.

예는 멀리에도 있다. 1월30일치 ‘한겨레 비평’은 파병반대를 일관되게 주장했음에도 파병반대 여론의 조성과 파병반대 의원들에 대한 면밀한 사후 검증에는 소홀했던 한겨레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김선일씨의 비통한 죽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추가파병 반대의 목소리가 드높은 오늘에도, 이에 대한 한겨레의 결연한 의지는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한쪽에서 ‘노마이 뉴스’라고 비난 받는 <오마이 뉴스>가 국회의원들을 설득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며, 추가파병 반대에는 서명하지 않은 그 이전의 반대의원들을 적시할 때, <한겨레>는 오로지 이라크 정황소개특집(‘이라크 주권이양’, 상하)과 사설로만 힘없이 파병반대를 말하고 있다. 나만의 오해일지는 몰라도, 탄핵정국에서 한겨레가 보여준 서릿발 가득한 분노에 비하면, 지금 한겨레는 너무 평온해 보인다.

‘한겨레 비평’의 출범은 쓴소리를 업으로 삼은 언론매체가, 그 쓴소리 ‘듣기’를 자처했다는 점에서 역시 한겨레다웠다. 옴부즈맨 제도가 일정부분 자리 잡은 방송에 비해, 고정적인 지면을 자사 비판에 할애하는 신문이 드문 현실에서, ‘한겨레 비평’의 존재의의는 더욱 빛났다. 그러나 나는 오늘, 역으로 <한겨레>가 이제 귀를 닫고 말만 하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는다. 그 우려는 ‘한겨레 비평’에 대한 이와 같은 ‘비평’(2003년 4월17일치, 메아리 없는 ‘한겨레 비평’)이 일년전쯤에도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물론 지면의 편집과 구성은 데스크의 독자적인 권한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한겨레 비평’에서 제기된 문제 전부를 지면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아니다. 나는 다만, 합리적인 비판과 문제제기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메아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메아리’는 비단 지면반영뿐만 아니라, 반론과 해명까지도 포함한다. ‘한겨레 비평’은 <한겨레>에게 있어 과연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계륵’인가. 그 답은 <한겨레>가 가지고 있다.

오승훈/비정규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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