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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17(목) 18:58

선거연령 인하 움직임 보도


여당 말 바꾸기 비판하고
'18살 선거권' 적극 요구했어야

선거권 행사 연령을 결정하는 합리적 기준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만19살이었던 어제와 만20살이 되는 오늘, 단 하루 사이에 정치적 판단 능력이 별안간 생기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정치적 능력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 80년 광주민중항쟁과 같은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에서도, 최근의 반전평화운동에서 10대의 구실은 만만치 않았다. 선거연령을 15, 10살까지 낮춘다 해도 논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태어나면서 모든 사람이 생명권을 갖듯 선거권도 제한없이 보장되어야 할까 아마도 갓난아이에게 선거권을 보장하자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선거연령을 둘러싼 논쟁을 끝낼 뾰족한 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이로 선거권을 제한하더라도 방향성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방향성이란 최대한 연령 기준을 낮추고 일찍부터 정치 참여와 표현의 기회를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비추어볼 때 최근 정부가 확정한 민법 개정안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지난 2일 정부는 성년의 나이를 만20살에서 만19살로 낮추는 민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언론들은 너도나도 민법상 성년 나이와 선거연령의 일치에만 주목한 채 선거법 개정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 전망했다. 이튿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도 ‘19살 선거권’을 적극 추진할 뜻임을 밝혔고,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등도 사설을 통해 19살 선거권을 적극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만이 총선 공약대로 ‘18살 선거권’을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6월3일치 ‘19살 성년 민법 개정을 환영한다’는 사설을 통해 ‘이번 기회에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주장해온 18살 인하 방안도 깊이있게 검토해볼 만하다’고 주장해 다른 신문들과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왜 국회가 19살이 아닌 18살 인하로 방침을 정하는 것이 당연한지, 18살 선거권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에 대한 분석은 생략됐다. 그러한 고찰이 없다 보니 18살 선거권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적극 검토’의 대상으로만 언급됐다.

사실 ‘19살 선거권’은 김대중 정권의 대선 공약이었을 만큼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주장이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18살 선거권’이 정치권 안팎에서 주장되어 왔고,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도 같은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지난 총선 열린우리당의 공약도 ‘18살 선거권’이었고, 지난달 청소년개발원의 설문조사에서도 국회의원 206명 중 53.9%가 18살 선거권에 찬성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선거연령을 놓고 이해타산에 바쁜 정치권 안에서조차 18살 선거권에 대한 합의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총선이 끝난 뒤 슬쩍 말 바꾸기를 하고 있는 여당의 태도를 강력 비판하는 한편, 여야 모두 18살 인하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어야 옳다.

나아가 후속 보도를 기획해 18살 선거권의 의미를 깊이있게 다뤘어야 한다. 선거연령을 19살로 낮추는 것은 이미 사회에서 성인 대우를 받고 있는 대학 1, 2학년과 사회 초년생들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 청소년 인권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청소년들의 인권이 바닥 수준을 헤매도 그동안 제대로 된 대책 하나 마련되지 못한 것은 청소년들이 선거권에서 배제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고 3이나 고 3 나이의 ‘학교밖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가질 때, 학교와 학생의 권력관계 변화는 물론 청소년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 마련에도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바라보는 일반의 인식에도, 정치를 ‘청소년 유해공간’으로 간주해왔던 교육 내용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 수 있다.

이러한 마당에 선거연령을 만19살로 낮추는 것은 이미 형성된 합의와 청소년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더구나 만18살로 낮아진다 해도 상당수 고 3 나이의 청소년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만18살이 되는 해의 1월1일부터 선거권을 보장하는 것까지 검토해 봐야 한다. 정치권의 저울질 속에 번번이 무산됐던 선거연령 인하가 44년만에 현실화될 호기가 마련된 이 때, <한겨레>가 청소년의 인권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을 기대한다.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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