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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5.06(목) 19:47

‘국회 문턱을 낮추자’ 기획 신선했으나 본질적 접근 미흡


썩은 국회, 일 안 하는 국회, 거드름 피우는 국회를 개혁하겠다는 약속들이 최근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정치권이 쏟아내는 개혁안들을 수동적으로 받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회의 탈권위주의와 탈특권을 위한 과제들을 발굴, 제시하고 있어 반갑다. 그 가운데 4월 20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나눠 실린 ‘국회 문턱을 낮추자’ 기획 시리즈는 자칫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기 쉬운 문제들까지 살피면서 ‘열린 국회’, ‘낮아진 국회’로의 변신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그러나 기획 자체의 신선함과 중요성에 비해 충분한 지면이 할애되지 못했고 국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본질적 과제들이 함께 다뤄지지 못한 점은 여러 모로 아쉽다.

이 기획에서 <한겨레>는 국회 문턱을 낮추기 위한 첫걸음으로 ‘의원 나리’들을 위한 전용시설의 폐지, 의사당의 개방과 방문 절차의 간소화, 옷차림과 말투에서의 권위주의 해소 등을 제안했다. 각각이 모두 의미있는 제안들이었으나 대개 단편적으로 훑는 수준에 그쳤을 뿐이고, 몇몇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충실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한 예로 매달 840여만원에 이르는 세비(보수)가 ‘노는 국회의원’에게도 꼬박꼬박 지급되고 있음을 꼬집으면서도 과도하게 높이 책정된 세비 자체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는 놓치고 있다. 좀더 공을 들였더라면 외국의 의원 세비와 비교 분석한 결과를 제시하거나 노동자 평균임금인 18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당에 환원해 정책개발비로 활용하기로 한 민주노동당의 결정이 가진 의미를 짚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까다로운 출입 장벽을 허물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민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좋았지만, 소수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못한 점은 한계였다. 장애인에게는 의사당 출입 절차가 간소화되고 민원창구가 개설된다 하더라도 또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간을 쪼개 찾아간 청각장애인에게 수화통역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신체장애와 시각장애를 가진 국회의원 당선자가 나오면서 최근 장애인을 위한 시설 개조 작업으로 국회가 분주하지만, ‘장애를 가진 국회의원’의 입장만 고려되고 있을 뿐 ‘장애를 가진 시민’들의 국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한겨레>는 이번 기획에 반영했어야 한다.

나아가 ‘작은 데서부터 국회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기획 의도에는 공감하나, ‘눈에 보이는 문턱’에만 주목했을 뿐 문턱을 낮추기 위한 본질적 과제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점은 무척 아쉽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 ‘안/밖’을 철저하게 가르는 보이지 않는 ‘제도적 장벽’이야말로 진정으로 넘기 힘든 문턱이다. 동맥경화증에 걸려있는 국민 입법 참여 시스템과 ‘4년짜리 철밥통’을 보장하는 각종 의원 특권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달 말 16대 국회가 끝나면 국민들이 입법 청원한 개혁법안들은 검토도 되지 못한 채 무더기로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이다. 이렇듯 유명무실해진 청원권의 현실과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국민발의제의 도입 필요성을 당연히 짚었어야 한다. 밀실 담합을 재생산하는 비공개 회의 구조와 까다로운 방청 절차도 아울러 비판해야 마땅하다. 면책·불체포 특권의 제한 방안과 함께 국민소환제와 같이 국민이 국회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살폈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또한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는 또다른 제도적·문화적 장벽으로 겹겹이 쌓여 있다. 전체 의석수의 20%에도 못 미치는 비례대표 비율과 소선거구 제도는 소수자의 국회 진출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차별적인 제도다. 남성 정치인들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문화는 여성들이 정치 진출을 꺼리고 아예 포기하도록 만드는 문화적 장벽이기도 하다.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낮추어야 할 국회의 문턱은 달리 보이는 것이다.

이후 정치개혁을 주문하는 <한겨레>의 기사들에서 소수자들의 시선이 적극 고려되고 <한겨레>가 다루기 주저하는 의회에 대한 국민의 직접 통제방식이 깊이있게 조망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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