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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4.08(목) 19:32

법원·헌재 관련 사설 사법개혁 필요 부각시켰어야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그것도 다수의 힘을 앞세워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국회의원들에 대해 국민의 분노와 저항이 확산되자 일부 언론은 유난히 ‘법치’를 강조하면서 절대 다수의 국민이 보여 준 저항의 뜻을 왜곡하며 폄하하고 있다.

빅터 차 교수는 〈조선일보〉에 쓴 칼럼(4월1일 ‘아시아 3국의 소시지 민주주의’)에서 탄핵표결 직후에 나온 몇몇 돌발사태를 거론하며 민주주의가 이보다 더 혼란스러워지기는 어려울 것이나 한국을 비롯한 몇몇 “아시아 민주주의의 추한 정치”에서 “궁극적으로는 법치가 승리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리고 그날 〈조선일보〉의 사설은 열린우리당이 정권과 의회권력까지 “혁명적”으로 “장악”하려 하고 있다며 지금의 선거운동 과정이 불법상태인 것처럼 몰아갔다. 〈동아일보〉의 어느 논설위원은 우리나라 법이 지금 “그로기” 상태로 보인다면서 우리나라를 무법천지로 묘사하고 있다.(3월30일 배인준칼럼, ‘무너지는 법, 피해자는 약자’)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탄핵철회를 논의할 양당 대표회담을 제안하자 〈중앙일보〉(4월6일 사설)는 탄핵철회 논의는 “헌법기관에 대한 모독”이며 “탄핵심판이 정치논리로 중단될 경우 법치가 흔들린다”고 했다. 그런데 일관되게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신문들은 공교롭게도 정해진 법에 따라 진행되던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 매도하고, 공정거래법을 비웃듯 자전거를 경품으로 끼워 팔며 판촉활동을 벌이던 언론사의 신문들이다.

한겨레는 ‘옳고 그름’ 외에 ‘다름’과 ‘시대의 변화’를 포용할 줄 모르는 사법부의 경직성을 비판하는 사설(3월29일 ‘대북송금 유죄확정 유감’, 3월31일 ‘실망스런 송두율 교수 판결’)들을 쏟아내는 한편,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는 그 역할과 의무에 대해서까지 진중한 주문을 하고 있다.(4월5일 사설, ‘헌재는 증인채택 최소화해야’) 사법부의 독립이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사법부가 국민의 뜻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겨레의 비판은 “개탄”, “유감”의 뜻과 “사법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소극적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구든 사법부의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무시하는 처사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정해야 할 법이 법률 전문가와 권력자들의 해석에 따라 널뛰듯 오락가락함으로써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뒤흔드는 일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법이 법조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법의 민주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법부는 국민의 뜻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선발’된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고, 사법부의 독립이란 명분 때문에 정부와 국회의 간섭을 배척함은 물론 국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한 뼘의 틈도 없는 성역이다. 수천만 국민의 주권이 한순간에 9명의 재판관 손에 넘어가게 만든 것도 법이고, 국민은 숨죽인 채 그들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기막힌 현실도 법 때문이다.

이번 탄핵사건은 온 국민에게 법의 민주화와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인식시킨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을 민주화하자”(한겨레 4월2일 시평)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결국은 탄핵사태 때문이다. 총선 이후 해결해야 할 가장 절박한 과제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는 구시대의 악법과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완고한 법들을 개폐하고, 사법제도를 국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개혁하는 일일 것이다. 이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한겨레가 제일 먼저 떠맡아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한다.

김진국/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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