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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3.25(목) 19:45

광화문행사 불법성 공방 보도 촛불집회 우상화 우려


최근 <한겨레>에는 ‘집회 금지법’에 다름 아닌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법률(집시법)을 비판하는 기사와 사설들이 줄을 잇고 있다. 단지 야간에 열린다는 이유만으로 촛불집회에 불법 딱지가 붙고 주최 쪽마저 간판을 ‘문화제’로 바꿔 달고 있는 현실에서 이같은 보도는 반갑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한겨레>가 집회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스스로 모순된 주장을 내놓고, 특정한 형식과 내용의 집회만을 우상화하고 있는 점은 심히 우려된다.

19일치 ‘촛불집회가 어찌 불법인가’라는 사설은 광화문 촛불집회가 쓰레기 한줌 남기지 않는 질서정연하고 평화적인 집회임을 강조하면서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바른 자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폭력행위가 한번이라도 일어날 경우에는 나머지 모든 집회가 일괄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지난해 말 개악된 집시법이 위헌적이라고 비판받았던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한겨레> 역시 개악 집시법을 줄곧 비판해 왔다. 그렇다면 마땅히 ‘지금까지의 촛불집회가 평화적이었기 때문’에 허용해야 한다가 아니라, ‘설령 폭력행위가 발생하더라도(!)’ 나머지 집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주장을 펴야 일관성이 있다.

물론 현 시기 촛불집회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수구보수세력에게 엉뚱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이해된다. 하지만 질서에 대한 <한겨레>의 강박은 도를 넘어선다. 이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던 지난 20일 ‘촛불집회, 각별한 주위를’이라는 사설에서 극에 달했다. “‘이라크 침략 1주년 반전행동 집회’가 모임 뒤 도심을 행진하여 광화문 집회장에 합류할 예정이어서 주최 쪽이나 경찰 모두 만일의 불상사를 염려하여 초긴장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각종 이익집단의 시위가 과격하게 변질된 적이 많았는데….” 반전집회 참가자들은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평화적인 민주시민’들과 다른 과격 집단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어 사설은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또 다른 과격시위와 과격규제가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며 촛불집회를 선진적 집회의 유일한 양식인 양 떠받든다. 이는 다양한 형식의 집회를 선택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를, 함부로 집회를 막아서고 집회장을 침탈하는 경찰에 맞서 집회의 자유를 방어해온 이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그나마 23일치 ‘개악 집시법, 헌법소원을 주목한다’는 사설이 우발적 폭력이나 사소한 충돌을 이유로 남은 집회까지 불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개악된 집시법의 여러 문제점들을 짚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관련 기사를 다룰 때 바둑판처럼 질서잡힌 ‘촛불의 자유’만이 보장받아야 할 집회의 자유가 아님을 좀더 명확히 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목청껏 외치고 있는 <한겨레>가 20일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다양한 열망과 주장을 ‘탄핵 무효, 민주 수호’라는 두 구호에만 가두어버린 것도 문제다. 그 날의 촛불은 하나인 동시에 하나가 아니었다. 국민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국회에 대한 분노가 참가자들을 하나로 묶어세웠지만, 열린우리당과 대통령에 대한 심판까지 주장하는 사람,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작은 실천도 이어졌다. 그러나 <한겨레>는 이러한 목소리들을 모두 외면했다. 23일부터 시작된 ‘네티즌, 정치혁명 이끈다’는 기획에서도 ‘탄핵 무효’라는 구호 아래 모여 있는 네티즌들만이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지금의 촛불집회는 ‘시민들 스스로가 열어가는 정치광장’으로서 꿈틀대고 있지만 문화제의 틀에만 안주하면서 내용적 성숙이 담보되지 못하는 ‘닫힌 광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겨레>는 촛불의 ‘축제’를 극찬하기에 바빠 억눌린 촛불의 ‘정치’는 되돌아보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촛불집회가 ‘탄핵무효’를 외치는 공간을 넘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광장에 모인, 광장을 둘러싼 다양한 주장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럼으로써만 <한겨레>가 그토록 원하는 민주주의의 성숙도 한발 앞당겨질 수 있다.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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