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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2.30(목) 21:09

새해에는 농민에게도 희망을


세밑,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 희망을 설계할 때이다. 2004년은 농민에게 참으로 어려운 시련의 해였다. 연초 세 차례에 걸친 대규모 상경 시위에도 불구하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끝내 비준되었고, 한 해 내내 쌀 시장개방 반대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했지만 쌀 재협상은 농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으로 타결되고 말았다. 이에 항의하여 지난 22일부터 농민단체 대표들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도 비닐 천막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장에서 만난 농민단체 대표들은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농민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무관심과 언론의 차가운 시선이라고 호소한다. 속 모르는 사람은 농민이 떼를 쓰고 있다고 하지만,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한 농부의 외침처럼 많은 농민들은 절망과 분노에 떨고 있다.

농민의 ‘가슴에 맺힌 한과 분노’를 달래주고 농민에게 새해의 희망을 노래하게 할 수 없을까. “쌀 협상 무효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농민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설사 재협상을 해서 의무수입 물량을 조금 줄인다고 형편이 별반 달라질 것도 없다. 이제는 쌀 협상에 대한 논란을 수습하고, 앞으로의 대책에 주력할 때다. 우선 정부는 쌀 재협상의 모든 과정을 공개하고 협상이 왜 이렇게 불리하게 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 쌀 재협상 과정과 결과에 대한 공개 검증에서 정부의 협상 자세 및 전략에 중대한 문제점이 확인되면 향후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등에서 같은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쌀 재협상 논란이 마무리되는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농민들의 요구처럼 대통령이 직접 농민과 대화에 나서 우리 농업과 농촌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여 농민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농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우선 정부는 농업·농촌문제의 해결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 혹은 핵심과제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과거 수많은 농정대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한 가장 커다란 이유는 전체 경제정책의 방향이 기본적으로 농업·농촌의 희생을 전제로 한 성장제일주의 정책이었고, 농정은 그로 인한 모순을 완화하거나 뒤치다꺼리하는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농업·농촌의 붕괴를 막고 새롭게 세우는 일이야말로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의 하나라는 인식을 갖고 국가경영전략을 수립한다는 믿음을 농민과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국익’의 증대를 위해 개방형 국가를 지향한다면, 그것이 농업·농촌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증대된 국익의 일부를 농민들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 정부는 쌀수입 확대에 따른 피해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여야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처럼 농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대증요법적 대책이 아니라, 2010년 혹은 2020년에 우리 농업과 농촌이 어떠한 방향으로 변할 것인가 혹은 변해야 하는가를 전망하면서 올바른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점이 중요하다. 하나는 농정의 틀을 효율주의 농업정책의 좁은 틀을 벗어나 농촌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농촌사회의 지속적 발전이란 농촌정책의 큰 틀로 전환하여 다양한 부문정책을 통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농업·농촌의 장래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농촌 주민의 주체적 역량과 참여에 달려 있음으로 농촌주민을 농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지만,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보듯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농업·농촌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은 더욱 커지고, 농촌에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주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희망을 설계하고 실천하는가에 달려있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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