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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2.09(목) 20:18

우크라이나-‘국민 이루기’ 진통


옛 소련권 국가들 일부가 민주주의 정착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1년 전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의 사퇴를 몰고 왔던 그루지야의 정변도 그랬지만, 이번 대통령선거 부정 시비로 악화된 우크라이나의 상황도 한 예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제외한 옛 소련권 국가들 중 인구나 경제력에서 가장 강하고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세력다툼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기에 이 나라의 행보를 국제사회도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정황은 하나의 민족이라도 분단과 외국 지배를 겪으면서 구성원들 간 이질성이 심화됐을 때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서부는 각기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 드니프로(드네프르)강 동쪽은 서쪽보다 더 친러시아적인데, 이는 두 지역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13세기에 몽골의 침입을 받은 후 오랫동안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가톨릭국가인 폴란드의 지배층이 정교신자인 우크라이나인들을 차별대우하고 개종시키려 들자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이 봉기하였고 봉기 지도자는 1654년 러시아의 차르와 보호협약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동부 우크라이나는 1660~80년대 이래 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였다. 반면 서부 우크라이나는 계속 폴란드의 지배 아래 있다가, 18세기 말 폴란드가 분할됨에 따라 대부분 지역이 러시아 지배 아래 들어왔다. 그나마 서부의 일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가 러시아 혁명 후 폴란드 영토가 되었고 2차 대전 초인 1939년 소련 영토로 편입되었다. 게다가 서부 지역은 대전 중에 독일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이리하여 우크라이나인들은 수 세기 동안 지역별로 다른 외세의 지배를 받으며 다른 삶의 경로를 거쳐 온 끝에 2차 대전 후에야 소련의 공화국이라는 지위 아래 영토적 통합을 이루었으며, 소련 해체 후 독립했다. 스탈린 치하의 대기근,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초르노빌(보통 체르노빌로 알려져 있다) 참사 등 엄청난 고난을 겪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독립이야말로 고난을 벗어나는 길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립국가 만들기에는 일단 성공했으나 국민 이루기는 이보다 훨씬 어려워, 내재했던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러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동부에 비해 서부는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중동부 유럽국들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고, 종교적으로도 정교 이외 기독교의 요소가 꽤 강하다. 역사적 요인에 따른 이러한 지역차가 있는 터에, 동부에 세력기반을 둔 쿠치마 대통령이 자신의 피후견인을 무리하게 후계자로 삼으려 함에 따라 서부 주민들이 반발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정치 갈등이 기본적으로는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정권과 새 정치를 꿈꾸는 세력 간의 대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대결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는 분리냐 통합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족 지식인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다른 삶을 살면서 다른 언어를 가진 다른 민족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특히 두 나라는 정치원리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성장한 러시아는 전제정과 집단주의를 정치적 원칙으로 삼은 반면, 우크라이나는 코사크들이 대변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선호해 왔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제 민주정 확립을 통해 이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 문명충돌의 장이 되고 있다는 느낌까지 준다. 하지만, 어느 편도 자기네에 유리한 세력판도를 짜기 위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되며, 해결은 우크라이나인들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시인 타라스 셰프첸코는 일찍이 그의 민족이 〈위대한 가족, 자유의 새 가족〉을 이루는 날에 대해 노래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자력으로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한 국민으로 서게 되기를 기원한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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