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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2.08(수) 18:22

북송사업의 진상


‘재일동포 북송사업’의 진상을 시사하는 문서가 발견되어 동포사회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교수가 국제적십자사 문서관에서 기밀 지정이 해제된 자료를 찾아내 잡지 〈론자〉(논좌) 11월호에 그 일부를 소개했다.

북송사업은 1959년부터 60년대 초반에 정점에 달했고 84년까지 계속됐다. 이 사업을 통하여 재일동포 8만6천여명과 그 일본인 가족 6800여명이 새 생활을 위해 니가타에서 청진으로 가는 배를 탔다. 남한에서는 ‘북송사업’이라 불리고, 북한에서는 ‘귀국사업’, 일본에서는 ‘귀환사업’ 등 제각기 입장에 따라 호칭도 다르다.

북한과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은 이 귀국사업을 애국사업으로 자리매겨 1958년부터 조직적으로 추진했다. 일본 정부도 인도주의란 명목으로 이 귀환사업의 추진역을 맡은 일본적십자사의 활동을 인적·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당시의 정계, 언론계, 지식인 등 일본 사회 전체가 이 사업을 환영하는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고 한다. 단, 한국 정부와 민단은 정면으로 반대했다.

이 사업은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듯이 북한과 총련의 주도로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려던 재일동포의 ‘자발적인 귀국’이었을까? 또한 일본 정부는 정말로 ‘인도주의’에 입각해서 이 ‘자발적인 귀국’을 지원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보여준 모리스 교수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것 같다.

(1) 귀환사업은 북한 정부와 총련이 1958년부터 벌인 활동이 그 출발점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 정부의 주도 아래 일본적십자사가 1955년에 국제적십자사에 보낸 편지가 이 사업의 출발점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적십자사와 국제적십자사를 이 사업의 표면적인 추진역으로 내세우면서 배후에서 주도적 구실을 다한 것이다.

(2) 북한 정부와 총련은 애당초 재일동포의 대량 귀국을 받아들이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그 당시 귀국을 받아들이려 했던 대상자는 일본에 구류되어 있던 남한쪽 정치 망명자와 북한에 있는 대학에 유학을 희망하는 동포 자녀뿐이었다. 국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사의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1958년 이후에야 주로 총련이 대량 귀국을 추진하는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3) 일본 정부는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재일조선인을 귀환시키기 위해 재일동포에 대한 생활보호급여액을 삭감하는 움직임을 1955년부터 1956년 전반까지 벌였다. 이렇게 해서 재일동포 1만3158가구(약 6만명)가 생활보호 수급을 취소당하거나 액수가 깎인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생활이 곤란해진 많은 재일동포가 북한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새로 드러난 사실에 비춰보면 일본 정부 주도의 ‘귀환사업’이란 정확히는 ‘추방사업’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차별과 편견에 찬 일본에서의 고된 생활마저 빼앗기고 북한에서의 생활을 선택해야만 했다는 것이 많은 재일동포가 한 ‘북한행’의 진상인 것 같다. 그들에게 북한행 이외의 그 어떤 선택지가 있었단 말인가? 한장밖에 없는 카드를 쓰게 만들어 놓은 데에 무슨 자발성이 보장됐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재일동포의 태반이 남한 출신자와 그 자녀였음을 감안할 때, 이 북한행이란 조국의 북쪽 땅이라 할지라도 역시 또다른 타향살이를 향한 길이 아니었을까?

이 사업을 통해 북한에 간 재일동포가 그 후, 일본 땅을 다시 밟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재일동포 역시 많은 이산가족을 북한에 두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재일동포들은 정체상태에 빠져 있는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돌파구를 찾아 하루빨리 타결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청산이라든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이라는 등의 거창한 대의 때문이 아니다. 그저 북-일 간의 자유왕래가 보장돼 갈라진 육친들과 일본에서 재회하고 그새 어려웠던 삶을 달래주고 싶어서다.

조국 분단의 희생자는 결코 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동길 오사카국제이해교육연구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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