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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2.14(일) 18:01

“2차 공판을 앞둔 송두율 선생님께”


송두율 선생님, 37년 만에 돌아온 낯선 조국의 독방에서 진실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고투하는 선생님께 이렇게 인사드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올봄 〈경계도시〉를 보면서 선생님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면서도, 귀국하면 웃는 얼굴로 선생님을 맞이하리라는 기대는 곧 선생님의 노동당 가입 사실과 정치국 후보위원설로 인해 산산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뮌스터에서 선생님을 가까이 지켜본 저로서는 선생님의 진실과 생각들이 세상에서 왜곡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권력의 강제력이 아니라, 귀국 성명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애초에 노동당 가입과 정치국 후보위원 사후인지설을 밝혔다면 이렇게 여론의 화살을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한 모순들을 민족이라는 담론으로 극복해보려는 선생님의 순수 학술활동이 간첩행위로까지 오인되고, 마침내는 수갑에 채워져 호송되는 선생님을 보자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무딘 정치감각을 탓하면서도, 또한 아직 국가보안법이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선생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며 사태를 관망하다가 지난 1차 공판 후 제자로서 그동안 느꼈던 심정을 토로하고 싶어, 늦었지만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이것은 민족의 고통을 대신 짊어진 한 지식인에 대한 동시대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이자, 또 제자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당신이 진 역사의 무게는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선생님을 부축하며 같이 역사의 흐름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선생님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과 인권 침해적 조사행위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더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제는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준법서약서 폐지 후에도 전향서를 강요하는 야만의 시대에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니 우리 목을 죄고 있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서라도, 법정에서 당당히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경계 위에서 외로움에 지친 한 개인이 아닙니다. 수감 후 “사람이 살아서 죽는 경우가 있고 죽어도 사는 경우가 있다. 없는 사실을 인정할 바에야 죽어서 사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씀하셨듯이 비록 좁을지라도 진실의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선생님!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지 않습니까 뮌스터 호숫가를 함께 거닐며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던 선생님의 우수에 찬 눈빛이 아직 저에게 생생합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선생님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격변의 시기에 많은 지식인들의 자기반성 없는 변절행위를 비판하면서, 젊은날 자기와의 약속을 성실히 지킨 헤름린의 소설 〈저녁노을〉을 권하셨지요. 선생님! 37년 만에 찾은 조국이 당신을 배척할지라도, 지조와 원칙에 충실한 마음으로 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16일의 2차 공판에서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고 당당히 외친 카스트로처럼 자신감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당신만의 송두율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송두율입니다. 선생님의 고난은 머지않아 남북통일의 튼튼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조영준/성창여고 교사·뮌스터대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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