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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1.27(목) 18:25

전투병 파병은 안된다


남북 분단 구조는 한국의 정책 선택 입지를 매우 좁게 만들고 있다. 분단으로 인한 안보상 취약성은 군사적 ‘대미종속’을 심화시키고 이것은 경제에까지 확장되어 있는 실정이다. 비록 우리가 ‘소강국’으로 성장해 있지만 자주국방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미국의 군사적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 관계 개선 속도를 최대한 높여 남북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달성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자존을 회복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도움을 받으면 자유를 잃는다’라는 속담처럼 해방 이후 미국의 도움을 받아온 우리는 그동안 미국의 노선을 충실히 추종하였다. 비록 최근 ‘반미’ 목소리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이나 일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 한반도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해 주는 사안이다. 남북분단과 대미 종속구조는 우리를 파병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만일 미국의 입장에 반하는 결정을 했을 경우에 돌아올 수 있는 후과는 너무나 뻔하다. 미국은 우리의 ‘아킬레스건’인 주한미군 철수와 신용등급 하향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올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새끼 호랑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두 가지의 압력이 동시에 밀어닥칠 때 버텨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파병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파병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미니-맥스(mini-max)’ 방안을 찾아내는 것일 것이다.

미국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이라크인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북한의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국군장병의 생명을 보존하는 길은 대규모의 ‘민·군 합동 이라크재건단’ 파견이다.

어려움에 처한 미국은 ‘친구론’을 내세워 전투병 파병을 내심으로 바라는 것 같다.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등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의도도 내보였다. 그러나 미국이 친구라면 우정에 대한 호소가 아닌 우리의 약점을 이용한 우회적 압력은 친구다운 행동이 아니므로 삼가야 할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냉전 이후 우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주의적 행동을 해왔다. 예를 들면 북한 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미국은 1994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영변폭격을 준비했었고, 우리의 ‘반전’ 정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무력공격했다.

만일 미국이 친구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미국의 친구로 자임해 온 일본, 독일, 프랑스, 터키 등 수많은 국가들이 파병을 하지 않거나 지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로 대접받지도 못하는 우리가 서둘러 파병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백보 양보하여 파병할 수밖에 없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건설·의료·교육 부대와 민간건설회사, 최소한의 경비병력만을 보내야 할 것이다. 민간 항공기 공격 등 무차별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만일 전투병을 보내 이탈리아군처럼 자살폭탄에 의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난다면 미대사관과 시청 앞은 연일 ‘반미시위’로 조용할 날이 없을 것이고, 이로 인해 한-미관계는 깊은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전현준/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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