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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1.20(목) 21:53

개경에서 한양까지


도시계획은 절차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도시기본계획의 수립과정을 보자. 시장이 기본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도시계획 전문가가 기본안을 만드는데, 학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따로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토지이용 전환의 방향과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자연스레 나온다. 그 이후 광역시장이나 도지사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쳐서 중앙정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통하여 건교부장관이 최종승인을 하게 된다. 계획안 작성부터 2년 내지 3년 정도 걸리는 이 과정을 거쳐야 본격계획인 도시관리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이 계획도 기본계획 못지 않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전국 어느 도시도 예외일 수 없다. 즉, 변화를 계획적으로 담아내는 일은 작은 도시라도 이렇듯 신중한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신중한 이유는 토지공간이란 불가역적이고 한정된 사회자산이면서 영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일반 도시와는 무게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프로세스는 너무 가볍다.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천도는 왕조 교체와 더불어 숭불왕조에서 유교국가로의 문명적 이데올로기의 전환을 표징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균전제라는 혁명적인 토지정책의 시행을 위해서는 옛 지주들이 우글거리는 낡은 개경을 벗어나 한양이라는 새 옷을 입는 게 유리하다는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또, 고려말부터 급증한 해안의 왜구 때문에 낙동강~남한강을 잇는 하운이 안전한 수송로로 되었고, 그 요충지인 한양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한강은 남부 내륙으로부터 올라오는 세곡을 위해서도 안전한 통로였고 넓은 하구에 수백척의 경강선들이 머물 수 있었다. 한양 천도에는 국가의 이상이나 왕조의 살림살이를 위한 절박한 사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브라질과 오스트레일리아는 내륙 개발에 국가의 장래가 달려 있었고, 일본은 지진에 취약한 도쿄로부터 국가 중추기능을 옮기겠다는 취지가 강하다. 실존적으로 보편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슨 이유가 있는가? 수도권집중 때문에? 우리는 한강수계가 가용 수자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상, 인구집중이 그렇게 잘못된 거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성장의 열매를 수도권이 독식하는 시스템이다. 독식방지는 지방분권화와 토지, 교육의 혁신책이 필수불가결한데, 이제까지 수도권규제에만 기댔던 잘못이 크다. 시스템을 방임한 행정수도 이전은 문제의 확대재생산이자, 본말이 뒤바뀐 접근이다.

그렇다면 새 수도 건설이라는 엄청난 물리적 변화와 비용, 통일 후 수도 입지의 혼란이라는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절박하고도 보편타당한 비전은 무엇인가? 이 점이 핵심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공약이란,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성과 실행방법을 철저히 검증하는 수고로움을 거치겠다는 의미다. 행정수도는 여타 공약과는 다르다. 국가의 초장기 포석이다. 한번 짜면 민족의 영구적인 자산이자 문화가 된다. 그 자체가 엄청난 무게의 역사이다. 임기 5년의 정권이 이 무거운 짐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또 해야 하는 것일까?

현실적으로도 둘 이상의 정권에 걸쳐 시행될 일이라면 그 당위성과 필연성에 대한 논의가 탄탄하게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사업이 앞장설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모든 것을 임기 내에 확정하고 추진하겠다는 강박관념은 벗어야 한다. 이는 참여정부가 싫어하는 군사정부의 방식이다.

이원영/수원대 교수·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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