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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24(수) 20:31

‘EBS 반영률’의 함정


전과목 평균 80% 이상, 특히 언어영역은 86.7%. 지난 17일 수능시험 직후 언론에 발표된 교육방송 반영률이다. 출제를 주관한 교육과정평가원 쪽은 물론이고 여론의 관심은 온통 교육방송 반영률에 쏠린 듯하다. 마치 이번 수능시험이 교육방송의 위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행사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기록적인 교육방송 반영률을 놓고 처한 입장에 따라 해석도 제각각이다. 마치 무슨 이권 다툼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주도권을 쥔 교육방송 쪽에서는 자사의 교재 내용과 일치하는 문제가 대다수 출제되었다며 입에 침이 마를 겨를이 없고, 유명 학원들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쪽은 교육방송 교재에 나와있는 내용은 시중의 교재에도 나와있어 반영률의 의미가 없다며 물타기에 여념이 없다.

양쪽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정작 학교는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도대체 수능시험이 고교 교육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교육방송과 사교육의 비교우위를 가늠하기 위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니 시험이 끝났어도 교육방송 강의보다는 학교수업에 충실한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벌써 내년 수능시험 준비에 들어간 고2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육방송에 전념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심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당장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교육방송 방송강의를 듣겠다는 아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어떤 아이는 한 술 더 떠 교육방송 반영률이 그렇게 높다면 차라리 학교수업을 교육방송으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일선 교사들의 걱정도 만만치 않다. 반영률이 80%가 넘었다면 학교마다 교육방송 방송강의에 더욱 치중할 수밖에 없고, 방송강의를 듣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일도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수업도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든 방송강의를 수업 내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공교육이 교육방송의 보완재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교육방송 방송강의가 망국적인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에서 나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급하더라도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에서 특정 교재의 반영률을 공개하는 것이 과연 평가의 공정성에 맞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한 어디까지나 학습의 보조 수단에 불과한 교육방송 방송강의에 교육의 중심인 교사와 학생을 집단최면 상태로 몰아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인지 궁금하다.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교육방송 방송강의가 우리 교육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개탄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인재육성이야말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신념 아래 단위 학교 중심의 교육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입시에 발목이 잡힌 우리 교육은 인재 육성의 기본이 되는 자율성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방송강의로 교육을 획일화하고 있으니, 입만 열면 ‘열린 교육’ ‘창의력 교육’을 강조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행여 눈앞의 사교육잡기에만 급급한 채 교육의 본질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올해 초, 교육부총리도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며 교육방송 방송강의는 어디까지나 해열제에 불과하다며 분명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는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한 해열제가 지나칠 경우 공교육이 더욱 부실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따라서 교육 당국은 교육방송 반영률이란 숫자놀음 뒤에 숨겨진 함정의 실체부터 파악하기 바란다.

최진규/충남 서령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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