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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20(일) 17:09

천도정치론/이홍동 편집부국장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문제에 또 ‘진퇴와 명운’을 걸어버렸다.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다시 신임투표가 될 수밖에 없게 됐다. 어차피 행정수도 문제는 정권의 명운을 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국민투표를 밀어붙이려면 지난해 대통령 신임투표를 두고 치렀던 열병을 다시 치를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정치적 결전에서 한나라당은 연전연패했다. 한나라당의 사고양식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줏대도 철학도 없었고 정치 일변도로 판단해온데다 조선·중앙·동아의 장단에 자주 춤춰왔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초과밀한 수도권에 대한 해소책으로 30년 이상 거론돼 오던 것이다. 수도권 집중을 고민하지 않은 정부가 없고 해결책으로 수도 이전과 같은 대안을 생각해보지 않은 정부도 없다. 다만 그 거대한 의미 때문에 범접할 수 없었을 뿐이다. 노무현 후보가 이 문제에 손댄 것은 명백히 정치적 동기에서였다. 대선에 ‘장사’가 된다고 본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최대의 국가적 과제로 30여년간 해결을 기다려온 사안일 뿐 아니라, 엄청난 정치적 갈등과 거래와 타협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다.

노 후보가 행정수도를 공약했을 때 한나라당은 수도를 옮기면 서울의 집값, 땅값이 폭락하고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라는 논리로 응수했다. 논란은 충청권과 수도권 표심을 서로 자극하는 모양새로 전개되었다. 한나라당은 충청권 470만 인구를 포기하고 수도권 2천만 인구에 기대를 걸었으나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결과는 노 후보의 승리였다.

두번째는 지난 4·15 총선에서였다. 대선에서 얻은 교훈 탓인지 한나라당은 이번에는 지나치게 충청권을 의식했다. 행정수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기하는가 하면, 신행정수도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 역할을 맡았고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충청도 표심은 돌아오지 않았고 한나라당은 다시 패배했다.

행정수도 문제가 국민투표에 부쳐질 타이밍은 국회에서 특별법 통과 여부를 두고 씨름하던 지난해 10~12월께였을 것이다. 이때는 마침 대통령 신임투표가 화두였고 대선자금 수사가 정치권을 옥죄고 있었다. 총선도 멀지 않았다. 그 뒤엔 탄핵과 총선이 이어져 아수라판 정치권이 이 국가 백년대계를 숙고할 겨를이 없었다. 행정수도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는 분명히 충분하지 않다. 되짚어 보면 야당인 한나라당의 문제의식 부재가 이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행정수도 문제를 이제서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은 다시 출발선에 서자는 것과 같다. 구실로 드는 ‘행정수도 이전’이 ‘천도’로 바뀌었다는 논리는 수준이 좀 낮다. ‘천도’라는 고풍스런 용어는 왕조시대의 한양을 통째로 들어 충청도에 가져간다는 뉘앙스를 수도권 시민들한테 강요한다. 국회와 사법부 이전은 애초부터 예고된 거나 다름없다. 실패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닌데, 상식적으로 국회와 사법부 없이 행정부만 달랑 옮겨 새 수도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국회에서 청문회와 공청회를 수십번 하더라도, 지역 이기심을 자극하고 서로 갈등할 국민투표 문제는 정말 신중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국민투표가 최고의 합의 과정이라는 것을 누가 인정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쪽이 이제 출발선에 섰으므로 전체 스케줄을 자기에 맞춰 다시 짜자는 것은 곤란하다. 30여년 논란이 거듭돼온 사안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지난 2년의 논의가 정치적이었지만 앞으로의 논의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도 믿기 어렵다. 이 문제의 많은 부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조선·동아가 ‘천도론’을 내세워 국민투표를 밀어붙이자 다시 그 장단에 춤추려는 한나라당은 수도 이전을 하겠다는 생각인지 그러지 않겠다는 건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국가 백년대계를 따져 무엇이 옳은지를 제대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홍동 편집부국장hdlee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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