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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06(일) 17:18

정치 역이민자 박지원과 김경재


박지원, 김경재씨는 한때 성공한 ‘정치적 역이민자’들이다. 미국 동포사회에서 탄탄한 기반을 잡은 이들은, 80년대 민주화가 진전되자 정치에 뜻을 세우고 거꾸로 태평양을 건너왔다. 정치적 목표도 일궈냈다. 더 큰 꿈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장관과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과 민주당 등의 요직을 맡으며 정치인으로서 화려한 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감옥 문턱을 넘는 데서 보듯 이들의 뒤끝은 좋지 않다. 현실은 지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감옥 가려고 태평양을 건넜을 리 없을 테니, 지금의 불운은 세상을 만만하게 본 탓이기도 하다. 찬란했던 시절은 잊혀져 가고, 자책과 비루함은 가슴을 찌른다.

박씨는 병원에서 치료받다 지난 4일 재수감됐고, 김씨 역시 감옥에서 사죄문을 썼다. 박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김씨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다르다. 박씨의 옥살이는 1년 가까이 된다. 실세 중의 실세, 왕수석으로 불리던 때가 엊그제 일인데 이젠 자기 삶마저도 스스로 경영하지 못하는 식물상태에 놓여 있다. 실명 위기에 몰린 채 병원과 감옥을 오가는 비극은 또 뭔가.

박씨는 재수감 직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맹세코 150억 시디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모함과 고통을 당하는 것을 억울해하지 말고 몸관리 잘하면서 이겨내라”고 위로했다. 왕조시대 누명 쓰고 갇힌 충신의 이야기가 겹친다. 박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것이고, 위안이 됐음직하다.

박씨는 사건 초기부터 현대로부터의 수뢰사실만은 일관해 부인하고 있다.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20년을 구형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를 극구 부인했다.

11일로 예정된 선고재판을 비롯해 앞으로 남은 상급심 과정에서 그의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수뢰의 멍에를 털면서 명예도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주장을 뒤집지 못하면 비난이 커질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실과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 이 지루한 법정논쟁에 마침표를 찍기 바란다.

불운에 빠진 또 한명의 정치적 역이민자는 김경재 전 의원이다. 그 또한 옛 여권의 핵심인사로 논리적 사고를 하는 토론의 달인이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씨는 최근 자신이 명예훼손을 한 동원증권 김재철 회장 등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죄문’을 보냈다. 김 회장도 민·형사상의 소 취하서를 냈다. 구속집행 정지나 보석 심리 등에서 재판부의 정상참작이 기대된다.

김씨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김 회장과 같은 실존인물을 등장시켜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케 하는 역을 맡기는’ 시나리오를 썼으나, 정작 자신이 시나리오 주인공에게 당하고 말았다. 사필귀정이다.

그는 마치 옥쇄를 하려는 것처럼 민주당 분당의 책임을 노 대통령에게 돌리면서 무차별 공격을 한 바 있다. 김씨는 “내가 감옥 가든지 노 대통령이 하야하든지 둘 중 하나는 끝장을 봐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마치 허무 개그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감옥으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의정활동은 비교적 반듯했다는 평가가 많다. 대화와 논리적 설득을 내세운 정책지향형이었으며, 기업돈 챙기기와 같은 일을 멀리한 것도 눈길이 간다.

1980년대 뉴욕의 <독립신문> 주필이자,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회고록을 쓴 이가 바로 김씨다. 70~80년대엔 미국에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이다. 그가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이들로부터 민·형사상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해를 받은만큼 하루빨리 감옥문을 박차고 나오기를 바란다.

박지원, 김경재씨는 지금의 ‘동반불행’말고도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두 사람의 지인들은 이 둘이 사업가와 언론인으로 70년대에 뉴욕에서 만났다고 한다. 사업 성공으로 재정이 튼튼했던 박씨는, 김씨와 그의 언론사의 유력한 광고스폰서로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삶은 80년대 초 망명객 김대중을 만나면서 달라진다. 특히 박씨의 변신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이다. 스스로 유망한 사업가에서 탄압받던 야당지도자의 측근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박씨가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김씨의 소개에서 출발했다. 이후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을 따라 태평양을 건넜고, 그 아래서 현실정치를 배웠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비운은 그들의 정치적 아버지 격인 김 전 대통령의 불행이기도 하다. 고광헌 편집부국장 kkk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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