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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5.09(일) 18:08

럼스펠드, 럼스펠드


1960년대와 70년대 도널드 럼스펠드는 미국 공화당의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 명이었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잘 생기고 열정적이고 좋은 학벌에 지적 소양도 있어 공화당의 JFK(존 에프 케네디)로 통했다. 개인적으로 나도 30여년 전 신문 전면으로 소개된 그의 이력과 야망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포드 행정부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거쳐 최연소 국방장관으로 발탁되었고 ‘차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에게 비서실장직을 이어받은 딕 체니도 당시 서열로는 후배였다.

우드워드는 그와 부시 가문과의 관계를 재미있게 설명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대통령 가도를 막은 최대 라이벌은 자신의 상관인 현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였다. 그는 아버지 부시를 부잣집 아들일뿐인 시시한 인물이라고 보았다. 아버지 부시도 포드의 권유로 중앙정보국 국장을 맡았을 때 자신을 대통령 가도에서 몰아내려는 럼스펠드의 음모가 개입돼 있다고 분개했다. 음모와 공작의 표상인 중앙정보국장 자리는 당시에도 대통령이 되기에는 결격사유가 될 수 있는 자리였다.

이후 과정은 알려진 바와 같다. 카터 이후 아버지 부시가 집권했을 때 그는 권력에서 멀어졌고, 클린턴 8년을 거쳐 부시 현 대통령이 집권하자 젊을 때와 판이한 모습으로 다시 권력 옆에 왔다. 미국적 방식의 대권투쟁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좋게 말하면 ‘국가에 대한 순수한 충성심’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는 미국의 군사전략을 새로 짜고 전세계 미군 전력의 구조를 바꾸고 한반도 주둔 미군도 재배치하고 있다. 미군 위치에 따라 전쟁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우리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계획에 따라 휴전선을 따라 인계철선 안에 배치되었던 미군은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이런 강한 이미지를 가진 럼스펠드가 마침내 이라크에서의 포로 학대 문제로 해임 논란에 휩싸였다. 워싱턴포스트는 2002년 1월 럼스펠드가 "아프간 포로들은 제네바협약에 따른 어떤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언하면서 포로 학대가 시작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외국에서의 전쟁포로를 관리하는 ‘수십년 된 관행’을 저버렸고 그 결과 이라크에서의 ‘무법체제’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럼스펠드 스스로 청문회에서 인정했듯이 이번 사태에 대한 그의 책임은 여러가지로 거론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럼스펠드가 아니라 바로 미국이 이런 짓을 할만한 나라가 되었다는 점을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워싱턴은 이미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 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말하는 미국‘제국’이라는 오만에 너무나 깊이 사로잡혀 있다. 견제나 비판은 받을 필요도 없고 허용되지도 않는다. 포로 개인이 아니라 이라크나 아프간이라는 나라가 이미 미국에 의해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미국의 포로학대는 파병을 추진하는 우리를 더욱 착잡하게 한다. 이제 파병은 미국과의 현실적인(열린우리당이 얘기하는 실용주의적인!) 타협으로서는 진행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측면에서든 정당화되거나 정의로울 수는 없다는 점이 더욱 명백해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제때 열리지 못하고 파병시기 연기가 거론되는 것은 곤혹스러움의 한 표현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럼스펠드가) 포로학대 사실을 나에게 알린 과정이 불만스럽고 불쾌하다"며 질책했다가 하루만에 "그는 나의 내각에 머문다"고 했다. 이런 태도라면 설사 럼스펠드가 물러난다고 해도 후임이 그보다 덜한 강경파이지는 않을 듯 싶다. 그가 사라지더라도 한국을 보는 부시 행정부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포로의 인권을 짓밟고 학대하는 나라와 군대를 돕기 위해 파병을 고민해야 하는 우리 처지가 안타깝다.

이홍동 편집부국장hdlee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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