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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3.28(일) 18:17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지난 16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로 성장해온 오늘의 <한겨레>를 있게 한 이 유명한 광고 문구는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도 쿠데타 주역인 노태우씨의 집권을 막지 못한 채 비탄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그러므로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임을 깨우쳐 주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민주화가 한판의 승부가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호헌 철폐’를 외치던 1987년 6월과 ‘탄핵 무효, 민주 수호’를 외치는 2004년 3월의 거리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경찰의 최루탄과 몽둥이에 맞서 비장하게 동무와 어깨를 걸고 뛰었던 그 거리는, 이제 30~40대가 돼 한국 사회의 중심으로 성장한 당시의 6월 세대가 부모·자식과 손잡고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육의 현장이자 축제의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거기에는 정치를 잘 몰랐으나 탄핵 폭거를 보고 꼭 투표하기로 결심했다는 아주머니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노래하면서도 그들은 비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랫가락에 맞춰 추는 그들의 춤은 신명났고, 모임의 끝을 알리는 사회자에게 “한번 더, 한번 더”를 외치는 모습은 공연장을 방불했다. 나눠준 전단들이 나뒹굴던 거리는 참가자의 자발적인 협조로 말끔하게 치워졌다. 우리가 바로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다는 자긍심이 얼굴마다 흘러넘쳤다.

우리 시민의 민주 의식이 이 정도로 성장했구나 하는 뿌듯한 감동을 안고 광화문에서 돌아온 27일 저녁, 대만의 지인에게서 온 전자우편은, 그러나 아직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총격 조작설과 개표부정 시비를 낳은 총통선거 후유증으로 연일 거리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그곳 상황을 전하면서 그 친구는, 정치인들의 변신과 사리사욕에 눈이 먼 기회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며 쌓아온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후퇴시킬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4·15 총선에 참여하기 위해 잠시 귀국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아직 경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분노한 국민의 불화살을 맞고 있는 정치인들이 지금은 변화를 말하지만 그것은 임시 모면을 위한 꼼수일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씨가 각 종단을 돌며 108배로, 고해성사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고, 멀쩡한 당사를 놔둔 채 천막당사로 옮긴 것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수많은 민주인사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군사독재 세월을 압축성장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하면서 한나라당의 과거를 반성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3분의 2가 넘는 국민들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탄핵을 여전히 잘못이 아니라면서도 국민 뜻을 겸허히 수렴하겠다고 하는 것은, 또 어떻게 양립이 가능한지 잘 따져봐야 한다. 탄핵주도 책임을 물어 조순형 대표를 압박하는 민주당 일부의 반성론도, 그것이 당장의 폭풍을 피하려는 모면책인지, 아니면 뒤늦게나마 민의의 엄정함 앞에 고개 숙인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탄핵정국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권력 지향적인 인사들을 제대로 걸러냈는지, 또 그들이 내세우는 서민 정당의 실체는 무엇인지 검증해봐야 한다. 사상 처음 의회 진출이 예상되는 민주노동당은 제도권 정당으로서 어떤 몫을 할 수 있으며, 대비는 얼마나 돼 있는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

이렇게 꼼꼼히 살펴본 뒤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2004년 4월15일은 우리가 갈림길에 선 이 나라 민주주의를 구해 내 한 단계 더 성숙시킨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 역사적인 날, 광화문에서, 그리고 전국 거리 곳곳에서 민주수호를 위해 켜들었던, 그 촛불을 다시 켜고 총선개표 중계를 지켜봄이 어떠할까

권태선 편집부국장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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