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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3.14(일) 20:46

가장 긴 휴식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파리 잡으려고 도끼 휘두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나눈 하루 뒤 허공을 한바퀴 돌아 내리친 도끼가 일단 파리의 앞다리 두어개를 잘랐다. 나는 탄핵안이 통과된 뒤 한 시간 동안 그게 무슨 일인가, 혼란된 상태로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한편으로, 끝까지 굴복(또는 타협) 않는 대통령의 오기나 승부근성이 답답했고, 탄핵도 발전은 발전이다라는 형식논리에, 우리 국회를 제대로 바꿀 수 있는 참 괜찮은 기회가 왔다는 생각도 뒤엉켰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모든 것을 망라해 거대한 파이를 만들었다. 파이를 둘러싼 정치게임이 한달간 펼쳐질 것이다. 대통령은 단호하게 파이 크기를 키웠고 게임 성격을 훼손하는 타협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거부했다.

게임의 구도는 간단하다. 4월 총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총선 올인이야 이전에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번 총선은 대통령의 진퇴까지 그 득표율로 바로 결정한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총선 전후에 내려지게 된다면 앞으로 한달 정도가 보기 드문 격전의 시기가 될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사실상 생명 주기를 다한 의원들이 탄핵안을 밀어붙인 것도 특이한 일이다. 하마터면 의석 3분의 2가 넘는다는 것을 한번 써먹지도 못하고 관둘 뻔했다. 상당수는 새로운 세상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스스로 도태를 결심하거나 각종 사유로 입후보 자격(공천)을 얻지 못했다. 이번 탄핵의 목적 1호는 총선 때 대통령이 나설 수 없도록 묶어두자는 것인데, 총선을 위해 국민들로 하여금 ‘그 지겨운 대선’을 다시 하게 하겠다는 사고 자체가 도발적이다.

지난 여섯달 동안 대통령은 꼭 탄핵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국회의 숫자에 피해의식을 느껴왔다. 그의 궐위, 사임이나 하야 따위는 이제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가 가져온 것, 그가 물러날 때 우리가 잃을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 ‘가벼운 정치’를 잃을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의 가벼운 정치를 냉소하지만, 과거처럼 권력의 무게가 짓누르는 ‘무거운 정치’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정말이지 소름이 끼친다.

-열린 정치를 잃을 것이다. 청와대 내에서나 청와대-국정원, 청와대-검찰, 청와대-재벌 등등이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다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지만, 그게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로인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도 경찰이나 검찰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정치적 부패를 근절할 기회를 잃을 것이다. 차떼기에서 형태는 조금 바뀌겠지만 부패는 틀림없이 다시 부활할 것이다. 지금 검찰이 노력하고 있다지만, 나는 아직도 검찰 조직이 다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스스로 그에 대한 중립성을 쟁취하고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구도를 뒤바꿀 기회를 잃을 것이다. 탄핵을 밀어붙인 쪽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노릇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행정수도 논란으로 상징되는 지역화의 기회도 놓칠 것이다.

-자주외교, 자주국방 그런 것들이 더 무디어지지 않을까

-없는 자들이 좀더 자기 몫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좀더 어려워질 것이다. 내가 보기에 노 대통령은 지난 한햇동안 이 문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퇴진한다고 이런 것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상징해온 많은 정책요소들이 다소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전망은 이런 것이다. 한두 달이 지난 뒤 노 대통령이 가장 유리한 환경 속에서 업무에 복귀할 것이다. 탄핵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새 출발의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왜냐고 총선 결과나 헌재 판결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휴식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긴 휴식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만 휴식 중에 지난 1년을 제대로 되짚고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홍동 편집부국장 hdlee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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