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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01(월) 20:38

스탈린 앞의 김일성과 박헌영


지난 9월 러시아를 방문한 일은 지난달 칼럼에서 썼다. 한달 동안 러시아에 머문 목적의 하나는 이미 4년 이상 걸린 자료집 〈소련공산당, 코민테른 그리고 조선〉 편집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옛 소련 공산당 문서관, 지금의 러시아 국립 사회정치사문서관과 내가 대표로 있는 일본역사가 기금의 협정에 따라 진행되는 사업이다.

소련 체제가 무너진 뒤 공산당·코민테른 자료의 공개가 시작돼 이런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2001년 자료집 〈소련공산당, 코민테른 그리고 일본〉을 같은 형태로 모스크바에서 출판한 뒤, 이 작업팀이 조선 관련 자료집도 계속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일본쪽에선 나 외에도 와코대의 유효종, 교토대의 미즈노 나오키 등 두 교수가 함께 작업하고 있다.

이 자료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258점의 자료가 수록돼 있다. 지난날의 국제공산주의운동,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자료는 지금 상황에서는 살아 있는 의미를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역사가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이상,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많은 자료는 대한민국은 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관계가 없다. 어느 쪽으로부터도 부정당한 운동의 자료인 것이다.

1945년 이후의 현대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공산주의자 김일성과 박헌영은 각각 ‘친지천’, ‘리춘’으로 나온다. 박헌영의 가명이 리춘이라는 것은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의 저서를 통해 알게 됐다. 임 교수는 코민테른 자료에 조예가 깊어 우리의 작업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이 자료집에는 북한의 1인자와 2인자인 김일성과 박헌영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 없지만, 두사람은 한국전쟁 때 매우 긴밀하게 협력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국제무대에 나왔을 때의 자료가 최근 미국에서 공개됐다. 두 사람 관련 내용을 곧 출간될 자료집에 넣으려고 노력해온 나는 〈냉전사 국제프로젝트-뷸리틴〉 제14·15호에 공개된 새 자료에 끌렸다. 그것은 중국공산당 지도자 저우언라이의 요구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과 박헌영이 요시프 스탈린과 회담한 기록(1952년 9월4일)이다.

52년 2월 극심한 미국의 공습에 시달린 김일성은 포로 문제에 관한 미국의 안을 받아들여 정전협상을 타결짓자고 마오쩌둥에게 제안했다. 김일성은 아마 박헌영과는 협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오는 김일성의 의견을 단호하게 일축하고, 이 문제를 스탈린에게 알리겠다고 대답했다. 김일성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논의를 한 뒤, 전쟁을 계속한다는 마오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만장일치로 내렸다고 통보했다.

그 뒤 모스크바를 방문한 저우언라이는 북한을 동정하고 있는 스탈린에게 김일성을 불러 얘기할 것을 재촉했다. 김일성을 질책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김일성과 박헌영이 펑더화이(팽덕회)와 함께 모스크바로 불려갔다.

이번 자료를 보면, 저우언라이와 펑더화이가 동석한 가운데 스탈린은 먼저 “조선 인민의 분위기는 어떤가”라고 물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분위기는 좋다”고 대답했다. 단지 김일성은 “공습을 빼면 전반적 정세는 유리하다”고 굳이 말을 꺼냈다. 그래서 고사포 부대, 전투기 부대에 대한 원조 문제가 화제가 됐다. 이윽고 스탈린은 “중국인과 조선인은 대미 협상에 대해 의견이 틀리다는 얘기가 있는데”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중국의 동지가 제안한 내용에 찬성했다. 그러나 조선 인민이 놓인 중대한 상황을 고려할 때 되도록 빨리 정전협정을 맺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의 중국 동지도 거기에 관심이 있다.”

그것은 훌륭한 대답이었다. 김일성은 중국쪽과 같은 의견이라고 되풀이해 얘기하면서도 협상의 조기 타결에 대한 희망을 섞는 정치적 지혜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스탈린은 “중국은 포로 문제에 대해 제안을 하지 말고 미국이 제안을 내놓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김일성은 그렇게 듣고 있지만, 마오의 복안도 스탈린의 생각에 가깝다고 말했다.

발표된 기록의 어디에서도 우리가 중국쪽 통역 스쩌의 회상으로부터 확인한, “미국 안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다”라는 스탈린의 발언을 보지 못했다. 스탈린은 중국인들 앞에서도 조선쪽에 동정을 나타내고 정전협상의 타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선쪽에 전달한 것이다.

김일성이 줄곧 대답했고, 박헌영은 처음에 한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탈린은 박헌영의 표정에서 그가 전쟁 계속을 원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김일성에게는 호의를, 박헌영에게는 의혹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52년 말부터 시작된 박헌영의 남로당계에 대한 압박과 비판·탄압은 김일성이 한 것이지만, 스탈린의 지시 또는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모스크바 회담에서의 두 사람의 발언과 태도는 소련공산당·코민테른과 조선공산주의운동의 관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최후의 페이지일 것이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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