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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0.18(월) 20:29

팔레스타인인들의 진정한 모습


텔레비전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축복이자 저주였다.

1987년에 시작돼 91년 막을 내린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때만 해도, 텔레비전 방송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끝없는 점령의 그늘 아래 살기를 거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운동이 전세계로 타전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과 동정을 표시했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방송에 등장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스스로 자유를 찾기 위해 무기를 들고 군사적 점령에 대항해 투쟁하는 모습이었다.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티파다’라는 대중적 저항운동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런 광범위한 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방송의 집중적인 보도에 힘 입은 바 크다고 본다.

그러나 2000년 9월에 시작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2차 인티파다는 이와는 판이했다. 오히려 텔레비전 방송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주에 가까웠다. 무장 저항운동은 거의 언제나 자살 폭탄공격자의 모습에 집중됐고, 죄없는 이스라엘 민간인의 죽음만이 전파를 타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던 집은 파괴되고, 나무는 뿌리채 뽑혔으며, 이스라엘의 안전을 명분으로 5m짜리 ‘분리장벽’을 건설하기 위해 땅을 빼앗겼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피해자의 모습보다 테러리스트의 모습으로 자주 비쳐지는 서방 텔레비전과 달리 아랍계 방송의 보도태도는 정반대였다. 급성장한 아랍 위성방송 프로그램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상을 화면 가득 채웠다. 그러나 아랍 방송들 역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을 또다른 전형으로 굳어버리게 했다. 아랍인들의 가슴 속에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모습이 새겨놓긴 했지만, 아랍방송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피해자라기보다는 초자연적 영웅으로 묘사해갔다. 이제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라면 불을 뚫고 지나가도 화상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게 됐을 정도다.

정치적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아랍인들의 이런 정서는 평화협상의 진정한 진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 문제가 군사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 상황에서 평화협상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정치인들이 평화협상 진전에 필요한 일정한 타협안을 내놓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런 편견이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서방세계에서 주민들을 맹목적으로 테러리스트라고 바라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서방과 아랍권의 서로 다른 선입관이 굳어지면서, 평범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은 줄어들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역동성을 감안한다면, 잘못된 선입관을 만들어낸 방송이야말로 이를 뒤바꿀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에서 송출하는 <중동방송(MBC)>이 최근까지 내보냈던 팔레스타인 관련 시리즈물은 이런 측면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아랍인들 모두에게 상당한 반향을 불렀다. ‘팔레스타인 바라보기’란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6명의 평범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가자지구에서 사는 이혼녀와 헤브론의 어린이 인형극 연기자, 베이트 사후어의 대학교수와 예루살렘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는 임산부,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는 10대 소녀와 나블루스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는 여성 등이 등장인물이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요르단강 서안지역 라말라에 본부를 둔 다르 프로덕션의 사에드 안도니 프로듀서는 “팔레스타인 사회의 모든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일 밤 자정뉴스가 끝나면, 카메라는 이들 보통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평범한 일과를 보여줬다. 등장인물들의 일상은 그동안 텔레비전에서 봐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공부하며, 식사를 하거나 가게에서 식료품을 사는 모습, 쇼핑을 하고 가끔 여행도 하는 등장인물들의 하루하루가 방송을 타면서 시청자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치나 무장투쟁에서 비껴 살아가려는 몸부림에도, 등장인물들은 일상 속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점령에 따른 고통을 피해갈 수 없었다. 헤브론의 어린이 인형극 연기자 니달 하티브는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최루탄이 터져 눈물을 흘렸고, 인형극을 보려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찾아가기 위해 (차량이 없어) 당나귀를 타야 했다. 예루살렘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는 아비르 리제크가 지나가는 길마다 어김없이 거대한 ‘분리장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가자지구의 이혼녀 아자 카셈이 찾아간 쉬자이 마을에 사는 친구의 집에선 축구장에서 놀다 15명의 어린이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또 알 아마리 난민캠프에 사는 14살 소녀 미야다 파라즈는 이웃집 주민이 이스라엘군에게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숨진 자기 어머니가 생각나 공동묘지를 찾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바라보기’는 지난 8월 말부터 6주 동안 방송됐다. 일개 방송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인식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우드 쿠탑·팔레스타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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