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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8.16(월) 15:04

왜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가?


남북관계가 정치적·인도주의적 분야에서 다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수차례의 남북 접촉과 회담, 방문 등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서, 북한에 대해 ‘예측불가’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말들이 다시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더 책임이 있다고 따진다고 해서 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북한 화해와 신뢰구축을 향한 행로에서 지체와 뒷걸음질이 여전히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일시적이고 사소한 장애물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남북 대화와 화해, 협력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좀더 중요한 점이다. 경제협력과 같은 남북협력 분야에서 후퇴하는 일은 실제로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오히려 거대한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실현되면서 이미 확립됐던 형태의 협력이 계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의 접촉이 동결 또는 정체됐을 때, 경제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협력은 남북한간 인력 교류, 정보와 아이디어 교환의 유일한 접근가능한 통로다. 다시 말해서, 경제협력은 남북한간 상호이해와 신뢰구축을 위한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남북한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한국전쟁 당시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런 통로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다.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유산과 ‘냉전’ 시기의 이데올로기적 도그마보다 실용주의와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심에 더 익숙한 세대이다.

38선 이북의 북한 지역에 비록 현재 얇은 층이긴 하지만 새로운 중간계층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알아야 한다. 일정 수준의 산업화와 합작기업 설립, 과학기술 개발, 교육, 도시문화, 도시와 농촌에서의 외화상점, 식당, 술집, 시장의 등장 등이 낳은 결과다. 중요하면서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사항이긴 하지만, 법이 허용한 경제활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최근의 경제적 자유화 조처도 추가적 역할을 했다.

특히 합작기업과 대외무역회사의 관리자들, 일부 문화예술가들, 과학기술계급의 대표적 인텔리겐차들과 이들의 자녀들인 학생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외국 유학이나 외국근무를 통해 북한 국경을 넘어 북한과는 다른 원칙의 사회생활을 직접 자기 눈으로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이 계층은 최상의 의식주 및 상품 서비스를 얻으려고 애쓰는 서구의 비슷한 계층의 정신적·사회적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포럼, 축제와 연주회의 주요 참석자들이고, 이들의 해외 행사 참석도 좀더 잦아지고 있다.

새로운 중간계층의 출현은 국가의 엄격한 가부장주의적 기능의 점진적 해체, 무엇보다도 관료들에 대한 국가의 억압기능의 약화, 관료들과 새로운 중간계층간의 혈연적이고 사업적 유대의 밀착화 등을 수반했다. 많은 점에선 이들의 출현이 역으로 이런 변화 때문에 가능해진 측면도 있다.

이들은 세계와 한반도의 정치·경제 현실에 대한 적응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젊은 엘리트들은 80년대 중반에 북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설립한 무역·산업기업의 성장과 영향력 확대를 통해 이 길을 찾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이들 회사는 현대적 설비를 갖추고 좀더 우수한 노동력과 과학기술인력이 배치된 기업들이다. 이 가운데 거대 기업들은 자체의 은행과 무역부서를 두고 있고, 세제와 수출상의 특혜를 누린다. 일반적으로 이들 회사의 경영자는 신세대 지배계급 출신의 교육을 많이 받은 적극적인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전반적으로 이들 회사의 구조나 기능, 국가 특혜와 보조금 수혜 등은 놀랍게도 설립 초기 국가의 지원에 힘입어 성공했던 남한의 재벌들을 연상시킨다. 북한 지배 엘리트들은 국가적 규모로 동원한 재정, 자원, 인력을 바탕으로 북한판 재벌을 만들어 힘을 길러 미래의 통일 한반도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장받고 정치적 영향력과 물질적 풍요를 보장받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 부류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속성을 지닌 또다른 북한인들은 소규모 도매업, 공중급식업, 다양한 형태의 일상적인 중개서비스, 그리고 심지어는 협동조합이란 형태로 사라졌던 개인제조업에 집중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전자든 후자든 남북한의 현재보다 아마도 더 민주적이고 다원주의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통일 한반도에서의 삶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의 ‘새로운 러시아인들’(노보에 루스키)이 자각했던 것처럼, ‘새로운 북한인들’도 필연적으로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또다시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재앙적 실수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새로운 세대들을 대결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일은 심각한 사태가 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선전전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의연하게 경제협력을 비롯한 남북한 상호협력을 확대하고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문제연구소 한국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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