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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독자칼럼 등록 2005.01.17(월) 19:25

몽양을 다시 생각함

빨갱이, 공산주의자, 개량주의자, 기회주의자…. 몽양 여운형의 이름에 붙었던 수식어들이다. 총탄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들과 그에 붙던 꼬리표들은 한없이 불안정했던 그의 삶을 보여준다. 그가 죽은 지 60여년, 그의 삶이 새롭게 평가된다고 한다. 어떤 주의자로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에 바쳤던 헌신과 업적, 그 자체가 온전히 평가받게 되었다니 다행스럽다.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중도좌파’란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중도(中道)’. 어쩐지 가장 평온하고 고요할 것 같은 위치가 중간인데, 몽양의 삶은 왜 그다지도 소란스럽고 험난했던 것일까? 그의 삶을 반추하다 보면 중도란 평가를 받기까지 그의 고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의 신념과 이상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절감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걸었던 길은 차라리 중도(重道)라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아니, 어쩌면 중도(中道)란 노선 자체가 스스로의 중심이 보통 무겁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는 길임을 그의 삶은 웅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자들로부터는 기회주의자라 비난받았고, 미군정과 우익세력들로부터는 좌익세력의 지도자라 하여 테러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죽는 순간까지 좌우합작을 시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가 좌우를 넘나들며, 혹은 무시하고라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신념이자 열망은 ‘통일된 조국’이었기 때문이다. 중심으로 향하기 위해 주변의 잔가지들을 헤쳐가고 스스로 그 중심에서 구심점이 되어 소소한 차이들을 수렴해 가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 어떤 시련과 장애, 회유와 야합의 시도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결국 중도란 그 누구에 의해서 언어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결과물로써 평가되는 삶의 자세라 할 수 있다.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지향을 중심에 두고, 그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새로운 실험조차 감행할 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바로 중도일 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는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무늬만 중도’를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양쪽의 칼날을 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혹은 사태를 관망하다가 제 잇속을 차리려는 약빠름으로, 그도 아니면 타자를 부정하고 자신을 꾸미기 위한 그럴듯한 포장지로 중도란 이름은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들에 의해 ‘중도’란 말은 계산기로 두드린 평균값처럼 화석화되어 버렸다.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고민의 결과로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발걸음을 무겁게 내딛던 중도(重道)의 그 치열함, 그 진정성을 기대하기엔, 이 시대와 사람들이 이미 너무 가벼워진 것일까?

임미나/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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