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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1.05(수) 20:26

상식이 통하는 사회


남아시아 지진피해와 개혁입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어수선한 연말연시에 신문 한 구석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검찰이 내란선동 혐의로 고발된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와 김용서 전 이화여대 교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는 기사였다. 검찰은 “생각을 표현한 정도가 지나친 측면은 있으나 폭동 등을 선동한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무혐의 취지를 밝혔다고 한다. 합리적인 결정이다.

이 결정이 합리적인 이유는 이들의 주장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검찰 표현 그대로 너무 지나쳤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고 헌정의 전복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구체적으로 폭동 등을 할 목적으로 선동하지 않은 이상 그들의 생각을 법으로 구속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판단이 합리적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러한 합리성을 항상 발휘해주면 좋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와 관련된 다른 기사를 보면, 검찰이 같은 시기에 한총련 의장인 백종호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한다. 한총련이 이적단체기 때문이란다. 상식적으로 보면 위의 두 분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한총련 역시 “정도가 지나친 측면이 있으나 이적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결정되어야 한다. 이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러한 기사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문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대통령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주장하면서 당선되었음에도 아직 한국 사회는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이 여실히 무너지는 지점은 그것이 무엇보다 이념과 관계되어 있을 때다.

이념으로 인한 몰상식과 비합리가 정점에 이르는 일은 정작 이념과 무관한 경우에 나타난다. 해를 넘기게 된 호주제 폐지법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거 중 가장 기가 막힌 주장은 호주제 폐지가 좌파의 논리라는 것이다. 좌파라는 마녀사냥은 성매매 방지법에도, 사립학교법 개정에도, 사회적 안전망 확충에도 적용된다. 한마디로 맘에 안 드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대체 좌파가 무엇이기에 이런 풍부한 상상력이 나오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예를 들어 서구의 좌파 중에는 우리 같은 성매매 완전금지보다는 공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좌파다. 해방정국에서처럼 이념의 탈을 쓴 몰상식, 비합리의 폭력이 횡행하는 것이다.

비합리와 몰상식의 사례는 경제적 합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제에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전국에 골프장을 200여개 더 짓겠다고 하더니 마침내 새만금에 500홀짜리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안까지 나타났다. 경기부양 효과는 그만하고라고 세상에 500홀짜리 단일 골프장이 있다는 사실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금시초문이다. 그것도 개펄을 막아 만들 새만금에 말이다. 아무리 창의력이 중시되는 사회라지만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다. 집회를 막기 위해 시청앞 광장을 공공재산인 ‘광장’에서 관청재산인 ‘공공청사’로 변경하겠다는 발상에서 법치국가에서 노조설립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비합리적 폭력의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에는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세상도 바뀌고 내 생각도 변하게 되면서 요즘은 사람을 구별할 때 좋은 사람 대 나쁜 사람의 이분법을 사용한다. 이념으로만 잴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분석할 때도 이념으로만 잴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그것을 합리 대 비합리의 이분법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비합리의 폭력이 보수나 진보의 갈등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더 희망차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의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제발,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살고싶다.

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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